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영국 출신의 미국 배우로 세계적 명성을 떨친 찰리 채플린은 젊은 시절 철공소에서 일했습니다.
어느 날 사장은 그에게 빵을 사다 달라는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잠시 뒤 빵을 사 온 채플린은 사장에게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그 봉투 안에는 빵과 함께 포도주 한 병이 들어 있었습니다.
“여보게, 이게 웬 건가?” 하고 사장이 묻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사장님께서 일이 끝난 다음에 언제나 포도주를 드시면서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포도주가 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그 뒤 사장은 채플린의 월급을 올려 주었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다른 태도로 그를 대했습니다.
채플린은 남들이 무심코 지나친 것을 세심히 살피고 필요한 것을 채우는 데 성실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작은 일에도 충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세계적인 배우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마르코 복음 4,31-32 ‘겨자씨의 비유’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작은 일에도 충실 하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평화, 환경, 평등, 자유 등 인류의 구원과 관련된 문제는 무척 거창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거창한 일은 처음부터 거창했던 것이 아니고 작은 일의 실천에서 비롯됩니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곧 소화 데레사 성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주 작은 희생을 바칠 수 있는 기회들을 놓치지 마십시오. 여기서는 웃음을 주고 저기서는 친절한 말을 하십시오. 오로지 사랑을 위하여 실천하십시오. 하느님의 눈에는 하찮은 것이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하느님께서는 하찮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분께서는 그러한 일을 통하여 큰일을 해내십니다. 겨자씨에서 큰 나무를 이루는 지혜롭고 성실한 농부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라고요.
하찮게 보이는 작은 사랑의 실천 하나가 세상을 바꾸는 밑거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있습니다.’또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일이 결국 큰일을 합니다. 눈에 잘 뜨이지도 많은 겨자씨가 땅에 떨어져 자라게 되면 큰 나무가 되어 새들이 깃들일 수 있듯이, 우리가 행한 작은 선행 하나가 세상을 아름답게 바꿔 갈 것입니다.
작은 사랑의 실천은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상대방에게 반갑게 미소지어주며 인사를 건네는 일,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하는 일, 병원에 입원한 사람을 찾아가 위문하고 기도해주는 일, 외로운 사람에게 말동무가 되어주는 일, 성당에서 낮선 형제를 만났을 때 반갑게 다가가는 일, 동네에서 자주 마주치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인사하는 일 등입니다.
우리는 미사가 끝날 때 사제가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하고 권고하면 우리는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응답을 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응답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주님과의 약속입니다. 복음을 전하겠다고 하느님 아버지와 약속을 했으면 실천을 하는 것이 곧 자녀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그것은 꼭 하느님을 믿으라고 말로 선포하는 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서 하느님을 찾기도 합니다. 작은 일에 충실하였을 때 그 열매는 튼실할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