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하는 삶을 산 이광재 헬리코

2024. 8. 13. 오후 12: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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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하는 삶을 산 이광재 헬리코

 

여기 2010.5.16 평화신문에 소개된 글을 하나 소개합니다.

 

44년 약사로서, 학산 공소와 본당 회장으로서!

이광재 헨리코(1937.6.8.-2011.12.16.) 회장의 삶은 신앙인에게나 주민에게나 아름다운 삶이었다. 곧 하느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애주애인(愛主愛人)의 삶이었다.

주민 3000여 명인 학산면에는 병원이 한 군데도 없다. 주민 수가 많을 때는 1만 명에 달한 적도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아픈 사람이 찾아갈 수 있는 곳은 천호당 약국밖에 없었다. 천호당(天護堂)'하느님께서 보호해주시는 집'이란 뜻이다. 약국 한 쪽에 긴 의자가 서너 개 놓여 있는 것만 봐도 산골 주민들 사랑방이란 걸 금방 알 수 있다. 이씨 부부는 1967년 이후 44년 간 이 약국을 지키고 있었다.

"옛날에는 다들 돈이 없으니까 외상약을 많이 갖다 먹었어요. 사정 뻔히 아는데 약값 달라고 재촉할 수도 없고. 몇 년에 한 번씩 외상장부 찢어버리는 게 일이었어요.” 가난했던 시절을 떠올리는 부부의 말마디에서 넉넉함이 그대로 묻어나온다.

베풀며 사는 사람에게서만 느껴지는 넉넉함이다. 그런데 이씨는 약사보다 '회장님'이라는 칭호가 더 자연스럽다. 실제로 43년 전 학산에 들어오기 전부터 공소회장으로 살았다.

이 회장은 충북대 약학과 재학 시절, 메리놀 외방전교회 주은로(M.Zunno) 신부를 만나 인생행로를 바꿨다. 당시 오송본당에서 사목하던 주 신부는 약혼녀를 데리고 인사온 그에게 "충북대 근처 강서지역에 공소를 낼 생각인데, 결혼하면 그 공소를 돌봐 달라"고 부탁했다. 세례를 받은 후 매일 새벽미사에 참례하는 성실한 약학도를 눈여겨 봐둔 모양이었다. 그는 "한 영혼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가겠다."고 했다. 약속대로 강서에 집을 얻어 이불보따리 신접살림을 풀고, 공소 현판을 내걸었다. "강서에 천주교 신자가 한 명도 없었어요. 자전거 타고 산골 구석구석까지 열심히 사람들을 찾아다녔지요. 새신랑이 학교 공부하랴, 예비신자 교리공부시키랴, 주일이면 공소예절 인도하랴 정말 바빴어요." 이 회장은 1967년 학산으로 이사왔다. 영동본당에 부임한 주 신부가 천주교 불모지 학산에 '신앙의 모퉁잇돌'을 놓아달라 다시 한 번 부탁한 것이다. "그래도 이곳에서는 약국을 열어 형편이 좀 나았어요. 자전거 대신 오토바이타고 전교하러 다녔으니까. 저 너머 양산면 주민들도 이 약국을 이용하니까, 사람들 만나기가 참 좋아요. 손님의 사돈팔촌이 종교를 갖고 싶다는 얘기만 들려도 달려갔어요. 한 영혼을 하느님께 데려가는 일인데 얼마나 신났겠어요." 이 회장은 "인근에 의사가 없어 예전에는 임종을 지키며 대세(代洗)를 숱하게 줬다""이 또한 산골 신자 약사의 보람"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사람 좋다보니 30여 년 전 사기를 당한 적도 있다. 어느 교우 빚보증을 잘못 섰다가 법원에서 재산압류 통보가 날아왔다. 답답한 마음에 법원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그 교우를 (감옥에) 잡아넣어야 돈을 건질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순간 큰 돌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통증이 엄습했다. 이 회장은 "감옥에 갇힌 사람을 꺼내주지는 못할망정 어떻게 내 손으로 잡아넣을 수 있겠는가" 하고 발길을 돌렸다. 그때 엄습한 통증이 심장병 징후였다. 심장병은 당시 서울의 대학병원에서도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다. 그래도 이 회장은 위기 때마다 기적처럼 일어나 전교회장, 교리교사, 공소회장으로 여태껏 살아왔다. 1990년대 중반, 청주교구장 정진석 주교(현 추기경)는 이 회장을 중심으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학산공소에 감동해 전격적으로 본당 승격을 허가했다.

"우리 부부는 오뚝이 인생이에요. 그리고 재벌 부럽지 않은 부자입니다. 여기서 자식 5명 대학공부 시켰지, 주위에 정든 형제자매들 많지. 뭐 부러울 게 있겠어요."(평화신문, 2010.5.16. 참조).

이 글을 읽고 저는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회장님의 삶은 곧, 하느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애주애인(愛主愛人)하는 삶이셨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삶을 사신 분이셨습니다. 미사가 끝날 때마다 사제는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고 주문을 하시면 우리들은 아무 생각 없이 아멘!”이라고 응답을 합니다. ‘아멘!’이라는 응답은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맞습니다.’라는 긍정입니다. 1년에 단 한 사람만이라도 교리반에 인도하도록 합시다.

댓글 1

  • 2024년 8월 14일 오전 12:07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나중에 죽고 나서 하늘나라에 가면 분명히 주님께서 물어볼 것입니다. 네가 세례 받고나서 기도와 네 정성으로 몇 사람이나 내 말씀을 전했는가? 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담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