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미국의 유치원생이 쓴 시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시는 이렇습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니까 좋다. 바둑이는 나와 놀아주니까 좋다. 냉장고는 먹을 것이 많이 있으니까 좋다. 그런데 우리 아빠는….’ 마지막 문장은 어떻게 끝났을까요?
이 마지막 문장이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문장은 ‘우리 집에 왜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합니다.
바쁜 직장생활로 집에 밤늦게 들어오고 그래서 아빠 만날 시간이 아이에게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빠’의 존재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지요. 이 유치원생의 마지막 문장을 보면서 ‘나는 사람들에게 또 주님께 어떤 의미를 지닌 존재일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의미도 모르고 자기 편한 데로 자기 욕심과 이기심만을 채우면서 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가정성화’란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가정성화란 가족 구성원 모두 나자렛 성가정의 모범을 따라 가정을 진정한 사랑과 생명의 보금자리,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그분께 봉헌하는 공동체로 바꾸어 나가자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아직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 46-50)
유치원생의 싯귀에서 “엄마는 나를 사랑하니까 좋다. 바둑이는 나와 놀아주니까 좋다. 냉장고는 먹을 것이 많이 있으니까 좋다. 다 좋은데, 그런데 우리 아빠는 집에 왜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합니다. 유치원생의 생각을 지배한 “우리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이 말을 바꿔 말하면 ‘우리 아빠는 별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거죠. 유치원생이 아빠를 필요로 느끼지 않는 것은 아빠에 대한 교감(交感), 사랑과 믿음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마태 7, 21) 라고 하십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어냐고 묻는 율법교사의 질문에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마태 22,39)라고 말씀하십니다.
갓난아기도 칭얼거리고 울어야 엄마가 젖을 물리고 보살펴 줍니다. 이는 엄마가 도와주리라는 믿음 때문이지요. 우리도 주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날마다 주님께 하소연(기도)을 하고 주님의 뜻을 살펴서 이를 행할 때 비로소 구원을 받게 됩니다.(마태 7, 21)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마태 7, 7-8)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일, 즉 사랑을 실천하여 모든 이의 친구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요한 15, 15)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