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된 신앙

2016. 4. 30. 오전 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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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님께서 직접 쓰신 편지를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 감옥에서 어렵게 구한 한지에 앞뒤로 쓰신 편지였습니다. 지금부터 170여 년 전에 쓰신 편지입니다. 최양업 신부님께서 쓰신 편지도 볼 수 있었습니다. 순교하신 분들의 행적을 기록한 편지였습니다. 우리 교우들이 교황님께 사제를 보내 달라고 청원하는 편지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교황님께서는 그 편지를 보시고, 먼 조선 교회의 신자들 생각에 눈물을 흘리셨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때로 우리는 너무나 쉽게 망각하곤 합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기쁨과 평화, 안정과 풍요로움은 바로 한 세기 전에 피를 흘려 순교한 신앙인들의 처절한 몸짓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곧 죽음의 길을 맞으면서도 의연하게 신자들을 격려하시고, 죽는 순간까지도 하느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김대건 신부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혼자 몸으로 조선 팔도를 다니시며 성사를 집전하시고, 말 그대로 길에서 죽으셨던 최양업 신부님의 땀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온 몸으로 박해의 엄중한 칼날을 받아들였던 순교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잠자리도, 먹는 것도, 입는 것도, 미사를 봉헌하는 것도 풍요롭고 쉬워진 지금 나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럼에도 무슨 불평이 그렇게 많은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무슨 바람이 그렇게 많은지 모릅니다. 감옥에서 죽음을 앞두고 교우들에게 쓰셨다는 김 대건 신부님의 마지막 편지는 너무나 안일하게 살아가는 저에게 좀 더 진지하게 살아가라는 편지처럼 느껴집니다. 순교자들의 삶을 하나하나 적으셨던 최양업 신부님의 편지는 만나는 사람 한분 한분에게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지라는 당부의 글로 느껴집니다.

 

예전에 레지오 단원들이 피정을 갔을 때, 신부님께서는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레지오 단원들의 첫째가는 직무는 무엇입니까? 어떤 분은 출석이라고 답을 하셨고, 어떤 분은 선교라고 답을 하셨고, 어떤 분은 사랑이라고 답을 하셨습니다. 또 어떤 분은 기도라고 답을 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모든 답에 점수를 주시면서 가장 정확한 대답은 ‘자기성화’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성화되면 누가 머라고 하지 않아도 출석을 하고, 자신이 성화되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선교하며, 자신이 성화되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기도 할 수 있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자신은 성화되지 않았으면서 남을 성화시키려고 하는 분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의지와 뜻이 먼저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분들을 볼 때도 있습니다.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곧 지치게 됩니다. 힘이 빠지면 다른 사람들 때문에 신앙이 식어버립니다. 즐거웠던 일들도 시들해지고, 성당에 나오는 것도, 기도하는 것도 재미가 없어집니다. 자신의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성화된 신앙을 가진 사람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기도할 수 있으며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성화시킬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주님 곁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가전제품도 전원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그저 고철에 지나지 않습니다. 전원이 연결되어야만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냉장고도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연결될 때, 주님 곁에 머무를 때 성화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5월 새날을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댓글 2

  • 2016년 4월 30일 오후 5:56

    자신이 성화되는 것, 그것은 아주 작은 착한 일을 하나하나 실천해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미미하게 보이는 작은 사랑의 실천이 바로 예수님의 유언에 보답하는 길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 2016년 4월 30일 오후 6:00

    앞으로는 주보 접는 일을 우리 레지오에서 한다고 합니다. 지시 받은 쁘레시디움에서는 모두 함께 했으면 합니다. 우리가 함께 할 때 주님께서도 함께 하실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