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구원받는 길은 선행이고 봉사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세 친구가 있었습니다. 제일 친한 친구는 그가 매일 만날 정도로 절친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친한 친구는 그가 아주 소중히 여기기는 했으나 첫 번째 친구 때문에 자주 만날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 친구에 대해서도 참으로 소중하게 생각하기는 했지만, 앞의 두 친구와 만나는 바람에 거의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이 사람이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가장 친한 첫 번째 친구는 죽게 된다는 사실이 밝혀지자마자 그의 곁을 떠나버렸습니다. 두 번째 친구는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면서도 그의 무덤까지만 같이 가 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친구는 그가 죽는 순간뿐만 아니라 하느님께 인도되는 시간에도 함께 하였습니다.
여기서 첫 번째 친구는 돈이고, 두 번째는 가족이며, 세 번째는 선행입니다. 우리가 가장 가깝게 생각하는 친구가 실제로 결정적으로 함께해주기를 바랄 때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돈이 있어야 삶이 제대로 보장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돈으로 보장되지 않는 것이 많을뿐더러 돈 때문에 더 큰 가치를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아니, 참된 삶은 돈이 아니라 또 다른 가치로 보장됩니다. 우리는 과연 그러한 가치를 누리고 있습니까? 그 가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우리나라에 오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착하게 살라고 강조하십니다. 소외되고 공통 받는 이들,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변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으라고 권고하십니다. 우리 모두 선행에 힘쓰도록 합시다. 주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실 때, 평소 우리가 세상살이를 하면서 쌓아 놓은 선행의 무게를 가지고 판단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자신이 높은 자리에 있으면 세상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높은 자리에 위치하다보면 권력자, 가진 자, 힘 있는 자들의 그림자에 가려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을 낮은 자리에 내려놓으면 내 주위의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 즉, 가난한 자, 병들고 소외된 자, 세상살이에 찌들고 외로운 자들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뜨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다가가 벗이 되어주고, 밥이 되어주고, 친구가 되어주어 선행을 몸으로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이끄는 것은 선행이고 봉사입니다. 선행과 봉사는 눈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몸으로,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낮은 자리에서 선행이 나날의 생활이 될 수 있도록 주님께 청해봅시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