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독서(렉시오 디비나)

2005. 9. 22. 오전 8:58:45

글자

         

 

(성서를 읽는 방법에 대해서 좋은 글 같아 옮겨봅니다. 신앙은 시작이 중요합니다.)

 

 

렉시오 디비나 (거룩한 독서) 의 실천


(순서)

1. 용어, 정의

2. 성서에서

3. 렉시오 디비나의 원리

4. 렉시오 디비나의 조건

5. 렉시오 디비나의 방법(단계)

6. 렉시오 디비나의 실천

7. 렉시오 디비나의 계속


1. 용어, 정의


1) 용어

오리제네스(185-254)가 제자에게 성서 읽기를 적극 권하면서 “신적 독서에 충실하라!” 고 하는 것이 용어의 첫 등장이다. 그러나 거룩한 독서는 유대교 전통에서부터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중세 전까지는 ‘렉시오 디비나’와 ‘성서’는 똑같은 의미였다(동의어). 즉, 성서를 읽는다고 했을 때, 렉시오 디비나를 한다는 것을 뜻했다. 매우 뿌리 깊고 넓은 의미를 지닌 것이다.

2) 정의

* 독서하면서 기도에 이르는 것, 기도하며 성서를 읽는 것: 기도와 독서가 공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서를 읽으며 기도하는 사람은 모두 렉시오 디비나를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로니모(347-419)는 편지에서 “그대의 성서 독서는 기도로 말미암아 자주 멈추어야 한다” 고 했다.

[성서는 그분의 말씀이고 성경 독서는 하느님 말씀을 듣는 것 . . 대화 . . 하는 것이만큼 하느님 말씀의 도구화를 조심해야 한다. 하느님(말씀)이 목적이 아니라, 어떤 관상상태를 겨냥하면 이것은 영신주의의 위험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머리 쓰는 묵상도 해야 한다.]

* 성독신공이라고도 한다. 수행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 수많은 기도 방법의 뿌리이다. 다른 기도 방법의 식별, 오리엔테이션의 기준이 된다. 따라서 렉시오 디비나를 유행하는 여러 기도 방법중의 하나라고 할 수 없다. 렉시오 디비나가 어떤 특별한 기술이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다. 레시오 디비나로 돌아간다는 것은 하느님 말씀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말한다.


2. 성서에서


성서에서, ‘렉시오 디비나 안에서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설명하는 것들로써 다음의 구절을 들 수 있다. 렉시오 디비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구절들이다.


에제키엘 36,26- 새 마음을 넣어 주며 새 기운을 불어넣어 주리라. 너희 몸에서 돌처럼 굳은 마음을 도려내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넣어 주리라

예레미아 31,33- 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그 마음에 내 법을 새겨주어,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내가 그들의 잘못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 죄를 용서하여 주리니, 다시는 이웃이나 동기끼리 서로 깨우쳐 주며 야훼의 심정을 알아 드리자고 하지 않아도 될 것이며,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내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요한복음 14,25-  여러분과 함께 있는 동안 나는 이런 일들을 여러분에게 말했습니다. 협조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 주실 성령께서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실 것이고 내가 여러분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해 주실 것입니다.


3. 렉시오 디비나의 원리


A 성서단일성의 원리:

즉, 성서를 성서로 해설(미드라쉬 독서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성서 구절은 다른 데의 성서말씀을 떠올리게 하는데, 두 이야기를 같이 묵상 할 때, 성서의 의미가 더욱 분명하게 다가오는 것을 말한다. 이야기는 다른 데서 이런 이야기를 떠오르게 하고, 더 쉽게 이해하게 한다.

B 말씀의 육화 원리(‘이 성서의 이야기는 내 사건, 내 이야기이다’ 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 렉시오 디비나의 정점의 예는 성모님이다. 그분은 당신의 일상 생활까지도 하느님의 말씀으로 알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삶을 기도하는 자세로 읽은 것이다.  성모님의 이런 자세를 배우지 않는다면, 렉시오 디비나는 피상적인 것이 된다.

C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

오리제네스는 “성서의 단 한마디는 예수이다. 예수를 얻으면 성서 전체를 얻은 것이다.” 라고 했다. 렉시오 디비나를 한다는 것은 예수님과의 더 깊은 관계에 들어간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4. 렉시오 디비나의 조건


1) 듣는 것 : 우리의 성서 읽기는 하느님을 듣는 것이다.

(읽기 = 듣는 것 = 렉시오 디비나의 출발점 )

우리의 우선적인 말함은 상대의 현존을 방해한다.

들음으로 내 안에 공간이 생긴다.

그 공간에 상대방을 내 중심에 모신다. 그러면 상대의 큰 창조성이 발휘된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얼마나 들으려고 하는가? 얼마나 생각하기에 바쁘고, 심지어 말하면서 생각하려고 하는가? 상대의 말을, 그 말에 담긴 마음을 들으려고 하는가?)

일기를 잘 하면, 즉, 잘 들으면 뒤의 것 - 묵상, 기도, 관상 - 은 저절로 된다고 본다.


신앙인으로서 듣는다는 자세는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구약의 핵심적 한 마디는 “들어라” 였다는 것을 상기하는 것으로 족하다. 


신명기(6,4-5)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느님은 야훼시다. 야훼 한 분뿐이시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

이는, 렉시오 디비나의 성장의 여정과 일치한다. (듣기-알기(친하기)- 사랑하기)


사무엘은 “주님 말씀하십시오,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3,10)

솔로몬은 “주님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지혜)을 주십시오” 라고 했다.(1열3,7)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듣는 것이 어렵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내가 고수(固守)하고 싶은 것이 있을수록 듣기는 힘들다.

자기 것(영성, 신앙의 노선, 애착)이 많을수록 못 듣는다.

하느님은 언제나, 다르신 분이다.

그러므로 듣는 자세가 중요하다. 놀랄 준비를 하고 듣는 것이다.

내 뜻대로(의견) 모든 것을, 심지어 성서말씀까지 재단하면, 하느님의 말씀을 못 듣게 된다.


2) 가난하고 불안정한 상태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꽂힌다.

가난하고 불안정한 상태가 진짜로 하느님을 찾는 상태이다.

하느님이 없으면 안 되는 상태이다( 성서상의 아나빔, 고아, 외국인, 과부의 상태).

가난이 렉시오 디비나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해 주신다.

가난이 렉시오 디비나의 조건이다.


3) 하느님 현존 자체에 대한 갈망이다.

특별한 체험에 대한 갈망이 아니다. 체험 자체가 목적이 될 때, 하느님 체험이 우상일 수 있다. 렉시오 디비나도 체험을 과녁으로 하지 않는다.

렉시오 디비나는 선물과의 대면이 아니고 선물을 주시는 분과의 대면이다.

기도는 하느님만을 원하는 것이다. 렉시오 디비나 안에서 이것을 경험한다.


5. 렉시오 디비나의 방법(단계)


아름답고, 설득력 있게 렉시오 디비나의 체험을 소개한 귀고2세의

[읽기 - 묵상 - 기도 - 관상]의 기도의 사다리는, 하나의 「도식」이다.

얼마든지 벗어 날 수 있다.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독서 행위가 벌써 기도이다. 왜냐면,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므로.


읽기 - <이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가>

묵상 - <이 본문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 읽기를 생략하면 내 말을 만들게 된다.

기도 - 자기 삶과 관련된, 건드림을 따라 기도, 대화한다

      <본문이 무슨 말을 나한테 하게 하는가? 시키는가?>


단계에 상관없이 처음부터 수동적으로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각각의 단계를 의도적으로 생략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한다면, 자기 말을 되 뇌이게 될 것이다. 위 세 가지는 균형이 필요하다. 사람에 따라 포인트는 다를 수 있다.


어떤 이는 곧바로 성서 본문을 떠나서 영으로 들어가라고 하는데 이는 적어도 렉시오 디비나가 아니다. 또 다른 오류는 본문의 역사 배경에만 만족하는 오류인데 이는 성서의 배경에 관한 지식은 얻을 수 있겠으나, 자신의 삶과 관련된 메시지를 얻기 어려운 것이다.


1) 읽기

성서 통독, 간략한 안내서, 영적 주석서는 렉시오 디비나의 전 단계라 한다.

읽기의 목표: 본문이 무엇을 말씀하는지 파악하는 것

<<천천히, 여러 번, 주의 깊게>> 읽기의 3원칙

“안다고 생각하지 말 것”: 처음 듣는 것처럼 주의 깊게 읽는다.

“본문이 말을 걸때까지” 미리 말을 하고 규정하지 말자. 본문을 존중한다.

읽기가 반복될수록 자기도 모르게 묵상으로 들어간다.


2) 묵상

내가 본문의 장면(현장) 안으로 들어간다. 등장 인물들의 말투, 억양, 눈빛에서 느껴지는 것, 호흡의 강약, 동작들을 의식한다. 말씀 안에 담긴 의도를, 마음의 귀로 듣는다. 묵상을 할 때에는, 육신의 눈과(문자를 읽고) 마음의 눈을(본문의 깊이, 영을) 다 가동해야 한다. 그러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나에게 다가오는 말씀을 듣게 된다. 그것에 더욱 집중하고 그 말씀 안으로 들어간다.


3)기도

하느님의 말씀(성서 본문)은 하나의 부르심이다. 그래서 그분의 말씀은 우리의 응답, 즉, 기도를 요구하는 것이다. 내게 말씀하시는 분에게 더 단순하게 집중, 갈망하는 것이다. 묵상한 것을 계기로 그분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감사, 찬미, 눈물, 중재기도를 드린다.


4) 관상

“변화된 시선”으로 보게 될 때 느끼는 하느님의 현존.

렉시오 디비나는 또 하나의 눈 - 속을 이해할 수 있는 눈 - 을 계발시킨다.

삶(생활)과 유리된 관상은 위험하다.


6. 렉시오 디비나의 실천


성서 저자의 의도는 신앙을 전달해 주는 것이다. 렉시오 디비나의 목적은 신앙의 성장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렉시오 디비나를 통해 찾는 유일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당신을 찾게 해주시는 분도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유념합시다.


간단한 정리) 읽기 - 문단 나누기 - 본문이 입질 - 머묾


[시작기도]

[읽기]  

1) 성서 본문의 전후 상황을 파악한다. 이 본문이 문맥상 여기 있는 이유..

2) 적어도 세 번 정도 천천히, 주의 깊게 읽습니다.

3) 성서 본문의 배경, 시간, 장소, 그 분위기를 이해한다.


[묵상]

4) 장소의 변화나, 내용상의 변화에 따라서 문단을 나눈다.

5) 등장 인물들을 안다.- 신앙을 표현하는 호칭에 유념한다. 그 변화도 알아차린다.

6) 인물들의 행동, 말들을 안다. - 동사(부사 포함, 능수동태)는 중요하다.

* 인물별로, 색연필로 다른 색깔로 구분하면서 칠해본다. 그 인물에 그 동작, 말들을 같은 색으로 하는 것이 덜 헷갈린다. 이런 행동들이 묵상을 더욱 자연스럽게 깊게 이끌 것이다. 색칠이 묵상의 한 부분이 된다.

7) 내가 본문의 장면(현장) 안으로 들어간다. 등장 인물들의 말투, 억양, 눈빛에서 느껴지는 것, 호흡의 강약, 동작들을 의식한다. 말씀 안에 담긴 의도를, 마음의 귀로 듣는다.

8) 이쯤되면, 성서 본문의 의미가 처음 읽어 넘겼을 때보다는 한결 마음에 와 닿고 이해가 된다. 그리고 내게 해주는 말씀을 듣기 시작한다.

7) 그것에 집중한다.


[기도]

8) 그것을 계기로 주님과 대화, 기도, 청원한다.


[관상]

[마침기도]


7. 렉시오 디비나의 계속


렉시오 디비나는 성서 본문에서 삶에까지 연결되고 그 사이에 ‘되새김’이 있어야 한다. 즉, [렉시오 디비나 - 되새김 - 생활] 의 구도가 반복되어야 한다. 렉시오 디비나에서 만난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살지 않을 때, 렉시오 디비나는 신앙인의 삶과 유리된다.


렉시오 디비나의 현장은 이제 나의 생활이 된다. 그것을 사는 것이 영적 생활이라고 한다. ‘대인 관계’가 또 다른 성서 본문이 되는데, 그것을 읽고, 묵상, 기도하는 것이다. (본문 해석에서 삶의 해석으로 넘어간다). 그래서 렉시오 디비나의 진정성을 보장하는 것이 대인관계이기도 한 것이다.


렉시오 디비나 본문선택 방법: 연속 독서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좋다. 즉,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속도에 맞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여의치 않을 때에는 주일 복음을 선택할 수 있고, 그것을 렉시오 디비나 하고, 한 주일간 되새기면서, 주님의 말씀을 삶에 육화시킬 수 있다. ***


# 거룩한 독서의

시작기도과 마침기도의 예


거룩한 독서 시작기도


말씀으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온 누리의 얼굴을 성령으로 새롭게 하시는

아버지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거룩한 독서를 시작하는 저의 마음을

당신의 성령으로 비추시어

성령의 숨결이 가득 서린 성서 말씀 안에서

생명과 빛을 발견하고

당신의 사랑을 온 마음으로 느끼게 하소서.


당신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사오니

저희를 새사람으로 바꾸어 주시고

완전한 사람으로 키워주시리라 믿사옵니다.


아버지와 하나 되는 기쁨에

저희를 초대하시고자

아버지의 참모습을 보여주시고

아버지의 뜻을 가르쳐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거룩한 독서 마침기도


손수 저희를 빚어 만드시고

생명의 숨과 말씀으로 저희를 살아나게 하신

아버지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당시의 말씀은 저희 기쁨이오니

그 말씀을 저희는 사랑하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저희의 피난처요 방패이신 당신께 도우심을 빌며

당신의 말씀에 희망을 두나이다.

온종일 그 말씀을 되새기며

밤에도 잊지 않겠나이다.


당시의 말씀은 저의 발의 등불이요

저희 가는 길에 빛이오니

당신의 말씀대로 살기 위하여

온갖 나쁜 길에서 발길을 돌리리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당신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

댓글 3

  • 2005년 9월 22일 오후 12:47

    <center><embed src=http://music.catholic.or.kr/sungga/mp3/2004090029.mp3 autostart="true" hidden="false" loop="-1" volume="0"><p>요즘,개신교가 신도수가 줄어 들어서 이단교가 많이 생깁니다.</P><p> 오곡백과가 많이 나는 계절에 성서의 예수님 말씀을 추수하시기 좋을 때 입니다.</P></center>

  • 2005년 9월 22일 오후 9:58

    원래 렉시오 디비나는 수도원에서 하는 방법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평신도 사도직을 인정하면서 많은 분들이 참석하기 시작했다죠?

  • 2005년 9월 23일 오전 8:49

    네 맞습니다......................좋은 것은 어디에 있던간에......믿음은 오로지 한 곳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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