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같아 옮겨옵니다.)
우리는 많은 근심 걱정에 사로잡혀 있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입니다.
시험장에서 시험보기 전에, 내가 며칠을 코피 터져 가며 밤새워 공부했던 것이 시험범위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생각도 하기 싫죠?! 얼마나 당황스럽고 속상하고 괴로운 일이겠습니까? 고등학교 때도 신학교 생활에서도 그런 일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는 뻔합니다.
시험을 보려는 사람은 누구나 우선 시험범위를 알아야 하고 어떤 힌트가 없는지도 봐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시험범위와 상관없이 무조건 열심히 합니까? 그런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세계에서는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생은 시험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인생에서 치른 모든 시험을 합쳐도 비교도 안 되는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시험이 하나 있습니다. 이 시험은 통과가 되느냐 못 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영원히 미칩니다. 통과되면 영원한 영광이고 통과되지 못하면 영원한 형벌이고 고통입니다. 우리는 이 시험을 최후의 심판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은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험의 범위와 힌트를 주셨습니다. 그 필요한 한 가지가 가장 중요한 시험을 통과하는데 핵심입니다.
본당에서 첫 영성체 교리를 끝내고
"첫 영성체를 하면 여러분은 예수님께 어떤 소원을 빌겠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한 아이가 “오래 살게 해달라고 빌겠어요!”
에고~~~ 첫 영성체 교리 다시~~~
오늘 초등부 미사 강론하면서 복음의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부분을 해석하기 위해서 "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하고 물었더니
한 아이가 손을 들더니 “건강” 그러는 것입니다. 에고~~~ 강론 다시~~~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응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를 하십니다. 아니 이 세상을 살자면 필요한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은 결혼을 안 해 봐서 그럴 것입니다.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라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필요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선 돈이 필요합니다. 적금 부어야 하고 노후를 위해 연금 부어야 되고 아이들 학비, 집세, 가정 보험료등등. 집도 필요합니다. 사회적 체면을 위해서는 좀 평수가 있어야 됩니다. 자동차도 필요합니다. 최소한 2000cc 이상은 타야 되지 않겠습니까? 좋은 대학에도 가야하고, 얼굴에 주근깨도 빼야하고, 몸매도 가꾸어야 하고, 취직도 잘해야 하고, 시집장가도 잘 가야하고, 핸드폰도 갈아야 하고 걱정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런데 정작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라고요?
죽음을 앞둔 사람은 앞에서 열거했던 것들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즉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걱정하지 않습니다. 눈앞에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정작 필요한 그 한 가지가 또렷이 드러날 것입니다. 이미 주님께서 이미 알려주셨습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람의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습니까?”(마르8,36-37)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라.”(마르6,31)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그 한 가지를 알려주셨습니다.
“내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내가 함께 있을 때에도 언제나 순종하였거니와 그 때뿐만 아니라 떨어져 있는 지금에 와서는 더욱 순종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힘쓰십시오.”(필립2,12)
내가 걱정해야 할 유일한 것 그것은 “나의 구원” 입니다. 내가 없으면 모든 것은 끝입니다. 아무리 좋으신 하느님 아무리 아름다운 세상과 행복이 있다 해도 내가 없으면 끝입니다. 즉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내가 지옥에 간다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명사, 세상 인기를 한 몸에 얻는 다해도 내가 영원한 불의 고통에로 떨어진다면 그 인기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세상을 닮으려 하는 사람은 세상의 운명을 따라가고 영원한 것을 닮으려 하는 사람은 영원한 것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마태22,37)
우리에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늘나라의 가치입니다. 가장 큰 지혜는 천국을 사모하고 천국의 가치를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6,33) 오늘 복음에서 구체적으로 그것을 보여줍니다. 마리아처럼 늘 예수님과 함께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시대에는 미사에 참석해서 성체성사를 이룸으로 성서를 읽고 묵상하는 것으로, 성체 조배하는 것으로, 묵주기도 하는 것으로, 아침저녁 기도를 하는 것으로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를 본받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 유혹은 너무 강하고 끈질깁니다. 편함과 안락과 즐거움으로 이성을 마비시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특별히 우리는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의 열정을 본받아야 합니다.
열정이 없으면 사랑은 식습니다. 무엇보다 진리에 대한 갈증을 느껴야 됩니다. 그것은 욕심을 없애는 것으로써 생기는 것입니다. 이웃의 불행을 함께 아파해야 합니다. 오늘 1독서에 가르침처럼 나그네들에 대해 친절해야 합니다. 사도바오로는 시험을 잘 본 가장 훌륭한 사람 중의 한 분입니다. 가장 성공한 인생입니다.
“형제여러분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꺼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으로 채우고 있습니다.”(골로1,24)
사도 바오로는 그 필요한 한 가지를 정확히 찾았고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신 분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이것만이 가치 있는 것이고 나머지는 부수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아는 것은 어떤 처지에서도 감사할 수 있게 합니다.
예수님의 희생을 아는 사람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 걱정에서 해방되어야 참되게 하느님을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느냐 입니다. 그러므로 실상 필요한 한 가지를 위해 포기할 줄 알아야 하고 체면도 버려야 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가지치기를 잘 하는 사람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여러분들은 시험공부를 잘 하고 있습니까? 어떤 바보들은 그래도 시험범위도 아닌 부분에서 열심히 시험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