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희망의 편지

2005. 9. 20. 오후 10:00:02

3
글자

 

 

 

 

정보의 홍수 속에서 보다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놓는 얘기 하나가 있습니다.

 

한 선비가 강을 건너게 해주고 있는 사공에게 으스대며 물었습니다.

 

"자네 글을 지을 줄 아는가?"

"모릅니다."

"그럼 세상 사는 맛을 모르는구먼"

"그러면 공맹의 가르침은 아는가?"

"모릅니다."

"저럼 인간의 도리를 모르고 사는구먼."

"그럼 글을 읽을 줄 아는가?"

"아닙니다. 까막눈입니다."

"원 세상에! 그럼 자넨 왜 사는가?"

 

이 때 배가  암초에 부딪혀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이번엔 반대로 사공이 선비에게 물었습니다.


"선비님, 헤엄치실 줄 아십니까?"

"아니, 난 헤엄칠 줄 모르네."

"그럼 선비님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에게는 이 얘기가 어떻게 들립니까?

 

이 이야기에서 선비의 모습은 어쩌면 많은 지식을 자랑하며 살지만

정작 '살아남는 법'은 모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사는 재미도 많고 보람도 많지만

우리가 덜컥 인생의 '암초'에 부딪히게 될 때 자기 목숨 하나

건지지 못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설령 세상의 지식은 모자라더라도 살아남는 법을 아는 사공이

오히려 실제적인 지혜를 가진 자가 아닐까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언젠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던 것이 아닐까요?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마태 16,26)

 

맞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중요한 일이 많더라도 먼저

'자기 목숨을 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더라도 살아남을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11,25-26)

 

두말할 것 없이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믿음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들음에서 온다고 했습니다.

이는 곧 성서를 읽는 것이 믿음을 키워준다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성서 읽기는 영적 섭생입니다.

하루 생활 계획의 첫 자리에 성서 읽기를 위하여 하느님께 봉헌할

시간을 정해 놓고 꼭 지키도록 힘써야 합니다.

시작을 위한 가장 좋은 때는 지금입니다.

 

지금 시작하십시오.

 

"지금이 바로 자비의 때이며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2고린 6,2)

 

 

 

-여기에 물이 있다  중에서-

 

 

 

댓글 2

  • 2005년 9월 20일 오후 11:11

    <center><img src=http://kr.img.blog.yahoo.com/ybi/1/75/80/kslofs/folder/2750959/img_2750959_1364218_0?1114173277.jpg><p>우리에게 정확한 메세지를 전해 주시는군요.</P><p>내 안에 예수님을 모시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거짓이겠지요.<p></center>

  • 2005년 9월 21일 오후 5:27

    <center><IMG src="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b/1376/0921San%20Matteo%20Apostolo%20ed%20evangelista%201.jpg"><p>오늘은 성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입니다.성서 아까와 하지 마세요.</P><P>주님의 말씀입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그러자 그는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 나섰다.</p></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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