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도하는 이유....

2005. 9. 14. 오후 9: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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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도하는 이유

- 김귀웅 신부·서울대교구 서초동 성당 부주임 -

 

신앙심이 깊은 농부가 있었다. 그는 바쁜 농사철에도 한번도 빠지지 않고 매일 아침·저녁기도를 바쳤다.

다만 머리가 좋지 않아 늘 바치는 기도문조차 외우질 못해 항상 기도서를 읽으며 정성껏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에 갔다 막걸리를 한 사발 드시고 돌아오늘 길에 그만 저녁기도시간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기도를 바쳐야 하겠는데 기도서가 없으니 바칠 수가 없는 난감한 처지였다. 순간 그 농부는 막대기를 하나 주워들고는 땅바닥에다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기억'부터 '히웋'까지, '아'부터 '이'까지 써놓고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 멍청한 소인을 용서하소서. 제가 저녁기도를 바치는 대신에 기억 니은을 적어놓았으니 하느님께서

이것을 맞추어서 저녁기도를 만들어 가져가십시오. 죄송합니다." 그날 밤 천사들로부터 사람들의 기도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하느님께서는 그 농부의 기도를 들으시고는 껄껄걸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오늘 기도 중에 가장 아름답고 정성어린 기도로구나!"


이 이야기를 통해서 기도가 무엇인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잘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흔히 기도를 하느님과의 대화라고 한다. 대화는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대화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하느님께 바치는 우리의 기도 역시 나의 뜻을 일방적으로 들어주십사 청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묵주기도 등 기도문을 줄줄 외우는 것 역시 참된 대화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기역 기은을 조합해서

기도문을 가져가십사 했던 농부의 그 기도가 바로 대화로서의 기도와 그 정성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대화를 잘 하려면 듣기를 잘해야 한다.

우리 역시 하느님과 대화하고자 한다면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성당에 앉아 아무리 귀기울여도 하느님의 말씀은 들려오지 않는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성서를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결국 하느님과의 대화로서의 기도의 시작은 성서 말씀을 열심히 읽고,

그 안에서 하느님께서 어떤 메시지를 나에게 주시는가를 찾는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기도를 해도 하느님께서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말하는 분들을 가끔 보게 된다. 그런 분들에게 개인적으로 이렇게 말씀 드린다. "제 기도란 기도는 하느님께서 다 들어주십니다. 그 비결은 하느님께서 들어주실 만한 기도만 드리는 것이랍니다.
월드컵 시즌에 한국과 독일이 경기를 하게 되었다. 아마 양쪽 나라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자기 나라가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 하느님께서는 어느 쪽 기도를 들어주실까? 하느님께서는 결코 이런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 하느님은 우리의 어떤 기도든 다 이루어주실 수 있는 요술쟁이나 마법사가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하느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다.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알고, 하느님의 마음을

알아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곧 하느님의 마음 안에서 살아가고자 기도하는 것이다.

이럴 때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그 본래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고, 그럴 때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큰 병을 앓게 될 때 우리는 쉽게 그를 고쳐주십사 기도한다.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좀 더 나아가서 그 병, 또는 시련을 통해 우리를 더 당신 곁으로 이끄시고자 하는 하느님의 사랑에 신뢰하며, 그런 사랑, 그런 신뢰를 가지게 해주십사 기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기도는 하느님께서도 들어주시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닌가?
한편 하느님께 바치는 경배는 교회의 공식적인 기도인 전례와 개인적인 차원의 신심으로 구별된다.

전례는 교회에 의하여 정해진 공식 기도문을 통해 바치도록 되어 있고, 그럴 때 효력을 드러낸다.

여기에는 미사를 비롯하여 7성사, 그리고 성무일도(시간전례)가 포함된다. 혼배성사 중 신랑이 서약하는 부분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 혼배가 무효가 된다. 세례성사 중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풉니다"라는 구절을 하지 않았다면 그 세례는 무효이다. 이렇게 전례는 공적인 효력을 지니는 것이다.
미사와 7성사, 성무일도 이외의 개인적인 기도나 단체의 기도는 모두 신심행위에 속한다. 묵주기도나 십자가의 길, 성시간, 그 외의 기도 모두가 신심행위로서의 기도이다. 신심은 반드시 이렇게 해야만 한다는 규정이 없다. 즉 자신의 처지와 상황, 그리고 그의 신앙심의 정도에 따라 얼마든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묵주기도 중간에 각 신비에 알맞은 성서구절을 묵상하며 할 수도 있을 것이고, 한 단을 바치고서 다른 일을 하다가 이어서 나머지 기도를 바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침기도 저녁기도를 가톨릭기도서에 나와 있는 대로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나름대로의 기도문을 만들어 바쳐도 되고, 성서를 읽고 성가를 불러도 된다.
촛불을 켜고 그 앞에 무릎을 끓어야만 참된 기도인 것은 아니다. 누워서 기도할 수도 있고 설거지를 하면서,

청소를 하면서도 기도할 수 있다. 이렇게 언제든지 기도하면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늘 곁에 계시며,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염두에 두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

 

빛과 소금 3월호에서...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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