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마음에 닿는 칭찬으로 시작하라
사람과 사람 사이 부대끼는 사회에서는 종종 오해가 발생 하곤 합니다. 그로 인해 야기되는 여러 가지 분쟁은 개인에게 환멸감을 주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위기를 극복하면서 우리들은 성장합니다.
시시때때로 발생하는 분쟁을 가장 잘 예방하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화이부동(和而不同), 곧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상황을 인정하는 마음가짐이다. 그로부터 라이벌은 어느 한 쪽을 패배시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승리를 구가합니다.
옛날에 어떤 왕은 적국의 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창 끝을 겨누던 숙적이었지만 그로 인하여 자신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그 왕은 적국의 왕을 인정했고, 거꾸로 인정 받았으리라는 생각입니다.
이렇듯 인간에게는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분쟁을 타개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당신은 상대를 인정하고 칭찬해 주기만 하면 됩니다. 상대를 중요한 존재로 인정할 때 그와 당신은 함께 발전할 것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든 간에 타국의 사람과 비교하면 스스로 우월감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이슬람교도는 다 마찬가지 입니다. 에스키모는 게으름뱅이를 백인 같은 인간이라고 격멸하며, 한국인은 간교한 사람을 일본인 같다고 욕을 합니다. 이런 이기적인 심성은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수단도 되지만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감정을 거꾸로 비즈니스에 이용한다면 의외의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자신을 경원시할 것 같은 상대가 거꾸로 진심 어린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면 처음에는 몹시 당황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누구보다도 절친한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단점과 장점은 있습니다. 문제는 상대의 단점을 공격하느냐, 장점을 부각시켜주느냐의 차이 입니다.
미국 30대 대통령 캘빈 쿨리지는 그런 인간의 마음을 잘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문서 작성에 자주 실수를 범하는 여비서에게 질책보다는 칭찬을 함으로써 주의를 주곤 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집무실에 들어가면서 타자를 치던 여비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옷이 참 잘 어울리네요. 당신은 참 아름다워요.”
갑작스런 대통령의 칭찬에 여비서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이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니 이상한가요? 하하! 그러다가 문서의 구두점을 놓치겠군요. 열심히 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 말을 들은 여비서는 자신의 실책을 알게 되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녀는 다시금 실수하지 않기 위해 정신을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칭찬이란 유용하면서도 사람을 고무시킵니다. ‘웃는 낯에 침 뱉으랴.’란 속담도 있지만, 실제로 자신을 칭찬하면서 주의를 환기시켜 주는 상대를 고깝게 여기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 합니다. 상대방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킬 것이냐 서로 자연스럽게 소통할 것이냐는 바로 당신의 말 한 마디에 담겨 있습니다.
<Tip>
어리석은 질문에 대한 현명한 답을!
어느 무신론자 한 사람이 신부에게 신의 존재를 증명해 보라고 도전해 왔다. 그는 내심 신부가 화를 내며 이렇게 말하기를 기다렸다.
“신이 없다고요? 그런 바보 같은 말이 이디 있습니까? 성서를 보십시오.” 하지만 신부는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의 회중시계를 꺼내 보이며 이렇게 대답 했다.
“내가 이 회중 시계의 추와 톱니바퀴와 태엽이 한자리에 모여서 옛날부터 움직이고 있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나를 모자란 사람으로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저 하늘의 별을 보십시오. 어느 별이나 완전하게 자리를 잡고 정해진 괘도를 움직이고 있지 않습니까?
지구나 혹성은 태양의 둘레를 하루에 백마일 이상 속도로 회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단 한 번의 충돌이나 혼란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신비를 우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누군가가 그렇게 조절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어느 쪽이 더 신빙성이 있는 말이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