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존경했던 피에르 신부님이 94세로 선종하신지 2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집없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아버지, 금세기 최고의 휴머니스트라 불리는 사제이셨지요.
신부님의 삶은
국가, 종교와 인종 그 모든 경계를 넘어 감동과 존경, 뒤따름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용산참사를 보면서 오늘은,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며 살아온 신부님의 ‘좁은 문’의 삶을 돌아봅니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모든 유산을 포기하고, 19살에 수도원에 들어가 사제가 되었고,
제2차세계대전 때는 반 나찌운동가로, 종전 후 국회의원으로, 그리고 1954년 엠마우스 공동체를 창설해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불의와 불평등에 저항하면서 사랑을 실천했던 분이셨습니다.
신부님이 선택한 ‘좁은 문’은
사랑과 정의, 사랑과 분노의 양날개로 살아온 결단과 열정의 삶이었습니다.
국가이건, 교회이건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사랑의 이름으로 분노하고, 주저없이 비판했으며,
희망의 이름으로 집없고 가난한 사람 편에서 일했습니다.
‘사랑의 대상은 모든 사람’이며,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돌보지 않는 것은 죄’이며
사람은 누구든 존엄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그의 신앙과 신념은
인간의 존엄함을 외면하는 가난과 폭력, 전쟁에 대한 분노와 저항으로 표출되었습니다.
“분노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려준다“ 하셨지요.
자신을 던져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사랑했던 신부님에게
분노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 가장 고통받는 자들을
먼저 보살피라고 말하고 싶다.
나눔은 자선이 아니라
더불어 살고자하는 당신과 나의 마음이다.
고통받는 자들 또한 그 고통이 지나가면
또 하나의 나눔을 주는 자가 되는 것이다“
사랑은
우리가 사는 이유이자 목적임을, 하느님을 사랑하는 길임을 삶으로 말해주신 피에르 신부님.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허락된 짧은 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