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과 충고의 차이
아일랜드의 극작가이자, 문학 비평가인 버나드 쇼는 1남 2여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지주계급 출신이었지만, 낮은 공무원 생활로 힘든 생계를 이어 나갔습니다. 그러다 곡물 사업에 손을 댔는데 그마저 실패하면서 더욱더 가난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버나드 쇼는 16세 때 학교를 그만두고 복덕방에서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술을 좋아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국립 미술관을 자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음악, 미술, 문학에 대한 폭 넓은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고, 위대한 극작가가 될 수 있는 양분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첫 작품인『미성숙』은 런던의 수많은 출판사에서 거절 당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작품 활동에 전념하여 희극 부분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또 1925년에는『성녀 조앤』으로 노벨 문학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의 일이었습니다. 연회장에서 만난 한 귀족 출신 젊은이가 그에게 다가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한때 선생님의 부친이 양복 만드는 일을 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렇다네.”
버나드 쇼는 자연스럽게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젊은이는 기회를 잡았다는 생각으로 우쭐거리며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왜 양복쟁이가 되지 않았습니까?”
버나드 쇼는 젊은이의 말을 듣고는 바로 응수를 했습니다.
“젊은이, 듣자 하니 자네 부친이 신사였다는데 그 말이 사실인가?”
“물론이죠. 영국에서는 꽤 유명한 신사이십니다.”
젊은이는 신이나 말했고, 버나드 쇼는 여유 있게 한마디 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어째서 자네는 신사가 되지 못했나?”
매사를 비판적으로 보는 특징 중 하나는, 감동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감동을 모르니 애정 또한 편협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판은 인간의 마음에 불안과 미움만을 심겠지요. 비판적인 사람들은 실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경향이 많고, 신경질적인 태도로 일관합니다. 말투 역시 당당하지 못하고 손발의 놀림도 불안정하여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불안해합니다.
가끔은 비판을 충고라고 생각하고 거리낌 없이 해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충고와 비판은 듣는 사람은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충고에는 배려와 사랑이 함께 하니까요. 우리도 말을 할 때 이점 유념해야 될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저 자신 본당에서 사목위원으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교우들에게 친절하게 해 보려고 꾀나 신경을 씁니다. 낯선 분이 보이면 다가가서 먼저 인사도 건넙니다. 그러나 어쩔 때면 자신도 모르게 목에 힘이 들어가 있을 때도 있었나 봅니다.
지난 주일 잘아는 교우 분이 다가와 웃으면서 하시는 말씀이 “단장님, 어느 분이 그러는데요. 단장님 목에 힘이 들어가 있데요. 단장님, 목에 힘 좀 빼세요.”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본당에서 일을 오래 맡고 있다 보면 아마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가나 봅니다. 또 나이가 들어가면 친절을 베풀기 보다 대접 받는 것에 더 익숙해지나 봅니다. 곡식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고 했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한 자리에 오래 머물면 안되나 봅니다. 정체되어 탁해지고 썩게 되니까요.
이건 비판의 말씀이 아니고 충고의 말씀으로 겸허히 받들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사목회 일도 금년으로 마감을 하려고 합니다. 이유야 어떻든 고여 있으면 썩게 마련이니까요. 업무가 과다하고 3년 임기가 만료되어 지난 일요일 금천지구 꼬미씨움 단장 자리도 내놓았습니다.
새해 기축년은 우리 본당에 새로운 일들이 시작됩니다. 복음화 교육, 여름가족 캠프, 가족 미사, 가두선교, 쉬는 교우 모시기 등. 이 모두 교우들께서 함께 힘을 모아 주셔야 가능한 일입니다. 올 한해 본당 발전을 위해서 소처럼 묵묵히 나아가는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주님께 의탁해봅니다.
To Love You More - Steve Barakat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