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 관념
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난 나자렛에 가셔서 안식일이 되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서를 읽으시려고 일어서서 이사야 예언서의 두루마리를 받아 들고 이러한 말씀이 적혀 있는 대목을 펴서 읽으셨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 행복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을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께서 두루마리를 마셔서 시중들던 사람에게 되돌려 주고 자리에 앉으시자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의 눈이 모두 예수께 쏠렸다. 예수께서는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 하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모두 예수를 칭찬하였고 그가 하시는 은총의 말씀에 탄복하며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인가!” 하고 수군거렸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필경 ‘의사여, 네 병이나 고쳐라’는 속담을 들어 나더러 가파르나움에서 했다는 일을 네 고장인 여기에서도 해보라고 하고 싶을 것이다” 하시고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실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잘 들어라. 엘리야 시대에 삼 년 반 동안이나 하늘이 닫혀 비가 내리지 않고 온 나라에 심한 기근이 들었을 때 이스라엘에는 과부가 많았지만 하느님께서는 엘리야를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보내시지 않고 다만 시돈 지방 사렙다 마을에 사는 어떤 과부에게만 보내셨다.
또 예언자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많은 나병환자가 살고 있었지만 그들은 한 사람도 고쳐주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 만을 깨끗하게 고쳐주셨다.”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는 모두 화가 나서 들고 일어나 예수를 동네 밖으로 끌어냈다. 그 동네는 산 위에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를 산 벼랑까지 끌고 가서 밀어 떨어뜨리려 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한 가운데를 지나서 자기의 갈 길을 가셨다. (루가 4,16-30)
◑이태리의 조각가이자 화가였던 미켈란젤로가 한 번은 귀족의 부탁으로 조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작업이 완성되자 그 귀족은 코가 뾰족하다며 조금 깎아 달라고 주문하였습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가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귀족 몰래 대리석 가루를 한 움큼 쥐고 작업대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코를 깎는 척하면서 그 가루를 조금씩 떨어뜨렸습니다. 그랬더니 밑에서 지켜보던 주인이 외쳤습니다. “이제 그만 하면 됐네.” 그래도 미켈란젤로는 계속 작업을 하는 척 하였습니다. 얼마 후 내려오는 그를 향해 주인은 이렇게 투덜거렸습니다.
“코가 너무 작아진 것 같아 ---.”
우리는 각자의 고유한 시각으로 대상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자신의 시각을 곧잘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우를 범하기 십상입니다. ‘무지의 지식’ 또는 ‘어리석음의 으뜸’이라 불리는 선입견이나 편견은 이웃은 물론 하느님 마저 자신의 틀에 맞추어 조정하고 소유하려는 교만을 부리게 만듭니다.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탄복하면서도 출신을 따지면서 자신들을 위해서 더 큰 기적을 베풀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분을 혈연관계에 예속시키고 독점하려는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적인 틀이나 고정관념에 묶이지 않으십니다. 우리도 각자의 좁은 사고와 이해의 울타리를 넘어설 때 비로소 이웃과 주님의 참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의 우물 2002/9월호 – 송현 신부님의 글을 옮겼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 처럼, 미켈란제로가 만든 조각 작품의 코 높이에 대하여 실재는 변함이 없는데도, 가루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족 해 하는 귀족의 고정관염, 이것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일 것입니다. 기축년 새해엔 우리 모두 고정관염에서 탈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