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초와 쓴약

2009. 3. 12. 오전 6:46:11

글자

 

사진은 가을의 구절초입니다.

서울의 가을에 찍었었는데..그곳이 가을이라니 한번 실어보내드립니다.

구절초를 말려서 다리면 쓴약이 되지요.

신경안정과 혈액순환에 좋은 약이라고 합니다.

씁쓸한 구절초 다린 물을 마시면서 건강이 좋아지기를 기다렸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팡듈을 가지고 건강진단을 해 주시던 신부님의 처방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던 그 수많은 환자들에게 하나같이 똑같이 구절초를 다려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공원에서 구절초씨를 받아서 이모네 집 마당에 심었다가

다음해 수확하여 말려 다려먹었습니다.

맛도 없었고 별로 뭐가 달라지는 것도 없었지만 말입니다.

그 사람들이 다 신경이 복잡하고 혈액순환이 안되어서 그 처방을 한꺼번에 내리셨을까요?

두고두고 그 생각을 하면서 마셨습니다.

 

뭐 믿음이 약하니 나아질 것도 없었지만,

믿음의 치유법들도 별로 다른바 없지 않습니까?

문둥병자더러 개울에 가서 열번 목욕하라고 하질 않나,

옷자락만 잡아도 영험한 기운이 흘러나간다고 하질 않나..

무속신앙과 그리 다른 것이 없는 치유법들이 성서에서 등장하곤 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

늘 생각해보곤 합니다.

어의 그대로 믿음은 믿을 뿐인 것인데

때론 보아서 믿고 때론 우겨서 믿고 때론 저절로 믿고 있습니다.

무속에서도 믿음은 마찬가지이니

신학이라는 그 휘황찬란한 레토릭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다 단순하고 정갈하게 하느님이 내 곁에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란 것..

병이 낫던 낫지 않던 그저 함께 가시는 분이란 것을 믿으면서

그채로 지금 여기에서 함께 가시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 안에서 확신에 찬 움직임도 생겨나는 것이고

자신감도 움터오는 것이니

조금씩 움찔거리면서 살아가는 많은 생명들에게 주어지는 사랑들은

삶이라는 것을 믿음으로써 살아지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나봅니다.

삶은 믿음의 과정이지

그 자체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항상 기억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자체는 순간으로서 절대라고 기억하려 노력합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양립할 수 없는 이야기일까요?

아닐 것입니다.

살아보신 분들은 다 이해하실 것입니다.

ㅎㅎ

 

댓글 2

  • 2009년 3월 12일 오전 8:36

    구절초 이름은 들어 봤어도 보기는 처음 봅니다. 그냥 풀인줄 알았는데 꽃이 예쁘네요. 자매님글을 읽으면서 나의 믿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네요.

  • 2009년 3월 12일 오후 5:56

    참 이쁜 구절초입니다. 우리나라 야생화 참 아름답습니다. 지금 그곳은 진달래 눈 망울이 손톱만큼 자랐을 텐데. 제가 살던 곳 뒷산 진달래가 보고 싶군요.

│ 이 │이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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