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연민에 틀어박혀 자신이 피해자라 우기는 피해의식 처럼 자기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스스로 자신을 자신의 삶에서 승자로 만들지 못하고 패자로 만들어서 불쌍하게 연민으로 가장하고
그 원인을 타인의 탓으로 슬그머니 돌리는 교활하고도 비겁한 짓을 얼마나 많이 해왔던가..반성한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도 자신의 삶은 자신의 것이라 살아나가는 삶을 바라보면서 은근히 부끄러워한다.
아침에도 해는 떠오르고 저녁엔 해가 진다. 누구의 탓으로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렇다.
그저 그런 자연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는 자신의 모습으로 설명없이 살아가는 자신의 삶..마른땅에 발디디고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것이 쉽기만 한 것은 아니니..바다가 갈라지고 맨땅이 나왔다는 기적은
아마도 자기연민의 늪에서 빠져나와서 마른땅을 밟고 삶을 살아나간다는 이야기의 비유처럼 들려왔다.
자신의 모습을 타인에게서 발견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꼴불견인지를 느끼는 순간 맘의 벽을 치곤했었다.
난 저 사람과는 달라..그렇게 자신을 보다 고차원적으로 합리화해왔었지만..이제금 아는 것은 그것은 비겁함이다.
스스로 인정하건대..얼마나 비참하고도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서도 자기연민 없이 자신의 삶에 감사하는 사람이
많은 것인지..삶이라는 것이 척박하더라도 삶을 아름답게 살아나가는 건강함이 소중한 것인지..느끼고 또 느낀다.
인생에 다른 돌파구가 없다면 그채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다시 시작한다. 아니다 연습할 시간이 없다. 살아나간다
시작이 없으시니 끝이 없으신 주님은 지금 여기서 나와 함께 계시니..그채로 삶을 살아나가기 시작한다.
정신을 차린다는 것은 아마도 이런 말이 아닐런지..싶었다. 절름발이 소경 중풍병자 하혈하는 여인..모두 나았다.
그러나 자기연민을 인정않는 고고한 바리새인들은 단죄받았다는 것을 기억해두기로 한다.,설명하지 않고 산다.
지금..여기서..살아나가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