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종류의 관계맺음의 시작은 어머니와 자식간의 초기 사회화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 원인을 따져서 무엇할 것인가..생각하지만
내가 이렇게 망가지기도하고 뒷쳐지기도 한 이유를 나는 항상 어머니의 탓으로 생각해 왔었다.
두살 위의 오빠가 열병으로 사경을 헤매일때 간호하다 지친 어머니에게서 조산으로 불쑥 세상에 나온 나..
젖이야 먹었겠지만 그다지 돌보아지지 않았고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았다.
오늘은 아버지의 기일..며칠 전 첫 제사라고 언니와 조카가 미국에서 서울로 왔다.
반가워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시집간 딸을 맞이해서 보다도 나에게 대하는 것와 언니에게 대하는 차이는
무엇때문인가..생각했다..멀리 오래 떨어져 살았어도 큰딸이 훨씬 살가웠고 나의 까칠함은 여전했다.
그 대단한 장남을 쳐다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우리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면 난 기분나쁘다.
잊혀지고 버려진 것 같아서..그러나 어머니는 자기는 똑같이 사랑했다고 우기신다.
밤을 새고서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니의 결혼..부모님의 현실적 서툴음으로 행복할 수 없었던 짝짓기..
그러나 언니는 분노를 통하여 하느님을 배우고 어머니에게 더 어른스러운 딸이 되어있었다..정말로 어른이었다.
어머니는 사모님이자 공주님..아주 지능이 뛰어나고 살림도 잘하시는 아이같은 분..그러나 난 품어드리기가 버겁다.
난 술은 안마신다. 그러나 담배는 어머니와 둘이 앉으면 같이 피운다. 어머니는 나때문에 피우게 된다고 하신다.
거의 음식은 내가 다 하지만 내가 너무 지저분하다며 앉아서 이야기하면서 저기 앉아서 컴하는 나를 불러서
가스 레인지에서 생선이 타는 것 같다고 뒤집으라고 말하신다..난 기분이 꼭 '식모' 같다.
어머니가 날 사랑하고 의지하는 것은 안다. 더이상 서로에게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도 안다.
한주만 지나면 언니가 가버릴 것이라는 것도 안다. 언니는 자신의 강압적인 결혼으로 분노가 많았지만
부모는 자신과 다른 사람이었고 무지해서 몰랐을 뿐이라고 이미 용서했다. 나는 어머니가 다른 형제에 비해 나를
무시해서 그렇게 대하는 줄 알았다. 어머니의 숨겨진 공주병을 언니에게 공개적으로 일러바치자 어머니는
언제 너는 어른이되니..냉정하게 나를 외면하신다. 그것은 나의 몫이었다. 혼란 속에서 살아온 것은 내탓이지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는 별도의 몫이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는 현실적인 어머니..나의 어머니..
몸으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어머니 나름으로는 진실이었다. 그것을 부정하려들던 나는 잘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강한 언어와 나의 언어가 달랐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홀로서는 작업을 했어야 했다.
이 글을 읽으면 우리 어머니가 아주 이상한 분이시라고 생각하시겠지만..그게 아니라 내가 아주 멍청한 사람이어서
아주 당연한 것들..나와 언니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도 자신의 어느 영역을
자식과 나누고 싶어하지만 내가 잘 안맞고 난해했을 뿐이었지 사랑이라는 것은 나의 언어와 나의 감성으로
맞아 떨어지는 진득진득한 희열의 감정의 도가니탕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오래 기도했다고 했다..언니는..
나의 감성이 빚어낸 상처가 분노가 되지 않고 드러나기를 기도해왔다고 한다. 언니와 너무나 오랫만에 맘을 열었다.
난 언니가 허상을 믿는 줄 알았다. 언니가 믿는 것도 현실의 하느님..내가 믿는 것도 현실의 하느님..오랫만에
말과 뜻이 통했다. 어머니의 어린애같은 구석은 내가 어른이 되어 받아주는 수 밖에 없다. 내 웅크러진 마음이
조금 더 넓어지고 견디는 내공이 생겨나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내 나이 오십에 부끄럽지만 이제라도 다행이다.
노력의 방향이 보이고 그것이 희망이 되니 알 수 없던 혼돈에 좌충우돌 고통스러워하던 감정들이 이젠
자리를 잡는다. 사랑이라는 것이 감정의 만족만은 아니라는 것..두고두고 다시 생각한다..하느님의 맘을 닮는 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