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3,13-17>
주님은 세례 받으시러 오십니다(3,13). 오시는 분 앞에서 요한은 주님께 죄인들이나 받는 세례를 거절하는 겸손과 공경의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요한은 당시에 다양한 종류로 이루어지는 세례를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공동체에 개종자(추종자)를 받아 들이는 히브리 세례, 사해의 연안 위에서 매일 반복된 엄하고 이단적인 교파의 세례, 다른 종교 운동의 세례, 요한은 자신의 세례가 성령으로 주님에 의해 약속된 이름과 얼굴을 향해가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요한 자신의 세례만이 주님을 받아들이는 이 백성을 변화시킬 것으로 믿었습니다. 결국 요한은 그의 이름과 얼굴 모습을 지금 여기에서 계속 전하고 있고, 수세기의 기다림과 성령으로 인한 세례를 받아들이는 첫째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겸손에 참으로 가까이 하시는 분은 오시는 주님이십니다(14). 예수님의 대답은 간결합니다. 반복 없이 지금은 이대로 하시오(15). 마치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발을 씻으려 하실 때 베드로가 거절하는 장면과 연상됩니다. "내가 하는 것을 지금은 너는 그것을 모른다."(요한 13,7) 하느님의 일이 제지되어서는 안됩니다. 베드로에게 그 설명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요한에게도 그렇습니다. 신중하고 신비로울 뿐입니다.
전통적으로 그 설명은 이렇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신다면, 우리에게 모든 의로움이 충만히 이루어진다는 설명이 적합할 것입니다(15ab). 이러한 설명에 요한은 세례를 허락합니다. 예수님께서 겸손한 모습으로 세례를 받으시며 당신 백성에게 마음의 회개와 죄의 용서를 보여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도 영으로 아들을 통해 모든 의로움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어떠한 하느님 의로움인가? 하느님의 의로움은 당신 백성을 위해 무엇보다 자비와 은총 충만함을 즉시 선사하시는 개입입니다. 의로움의 길은 요한에 의해 시작되고 열렸습니다. 주님께 신뢰하는 세리들, 창녀들이 받아들여진 길입니다(마태 21,32).
이제 의로움은 신비로운 모양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그 세례는 십자가와 영광에 열려있습니다. 모든 의로움입니다. 물, 침수, 영,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늘은 그리스도를 위해 당신 역사적 삶 시작부터 끝까지 열려 있습니다. 열린 하늘과 아버지 가슴으로부터 높은 곳에서 비둘기 같이 영이 아들, 인간성 위에 내려옵니다. 영이 내려와 사제, 왕, 예언자, 신랑으로서 주님을 축성합니다. 주님은 먼저 십자가 상에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당신 인성을 부수어야 하고, 마지막 인성을 취해야 하며, 당신 자신, 살아 계신 영 자체가 되셔야 합니다. 마지막 아담, 늘 성령을 주실 수 있는 분(고린 15,45), 이 위에 항상 돌아와야 됩니다. 이제 하느님의 백성이 영의 거처입니다(16).
고요함 속에서 영을 받으면서 그리스도의 순종과 온순함이 지금까지 소개됩니다.
아버지로부터 나오는 영의 활동은 아들 위에 내려앉기 위해 옵니다. 세례는 삼위일체적 현시, 신현입니다. 아버지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매번 ’나와 아들’은 영의 현존 업적, 순간을 특별히 합니다. 주님의 세례, 거룩한 변모, 부활 때, 이는 나의 아들입니다. 아들은 오직 영에 의해 세례받는 자입니다. 이제 구약에 하느님은 당신 아들을 다양한 형태 하에 나타나는 인격체로 드물게 그러나 정확하게 가르칩니다. 아들은 역시 신랑을 가르키기도 합니다. "사랑스런" 아들(hoagap t s)(창세 22 ; 아브라함의 유혹) hoagap t s의 히브리 본문은 jahd(유일한 2.12.16) 사랑스러운 독생자(시기의 충만에) 희생적 제물입니다. 아버지께서 분명히 죽음에 처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내게 기쁨이 된다." eudok은 -에 대해 좋게 생각한다. 만족스럽다. ∼위해 승인을 현시하고, 향하여 기쁨을 표시한다(루가 2,14)라는 뜻입니다. 큰 물은 역시 죽음의 표징입니다(이사 28,2. 15-16; 17,12-13). 시대의 끝에 다시 세워지고 살아난 메시아적 백성의 새 성전은 모든 것을 낳게 하고 살게 하는 하느님의 영, 생명의 물줄기가 발산될 것입니다(에제 47,2; 요한 19,34.30; 묵시 22,1-2). 부활한 양의 승리의 목소리가 그렇게 큰물의 소리와 유사합니다. 물은 이제 죽음의 징표가 더 이상 아닙니다(묵시 1,15). 왜냐면 큰물은 십자가의 무거운 세례, 희생적 죽음에서 전환된 하느님의 아들에 의해 취해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령 충만으로 우리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세례의 순간으로서 선물로 오셨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세례는 영, 부활을 위한 십자가 축성, 무덤으로 끝난 세례의 참 시작입니다. 세례는 하느님과 사람 앞에 당신 생명의 참 시작입니다. 세례 받으신 주님의 삶은 인간을 방문하시면서 왕국을 준비하시면서 지나가시는 사랑입니다.
* 대전교구 곽승룡 신부
[대전] 주님은 세례 받으시러 오십니다
2005. 1. 10. 오후 2: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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