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 사랑”

2005. 1. 10. 오후 2:21:48

글자
태어난 지 17개월된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달리 혼자 떨어져 행동하며, 생명이 없는 물건을 좋아하며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자신의 몸이나 물건을 돌리거나, 흔드는 것과 같은 반복적인 행동에 몰두하고 말로 하는 의사소통은 물론 언어 이전의 몸짓 언어조차 없습니다. 가까이 다가가거나 안아주는 데에 대해서 무감각하며, 거의 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반응이 없어 의사를 찾아갔더니... ꡐ자폐증ꡑ이라는 진단을 내립니다. 치유할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로지 자신만의 세계에 머물기를 원하고 다른 것에는 관심 없는 자폐아를 정상인과 똑같이 키워내는 과정을 담고 있는ꡐ아들 일어나다ꡑ라는 책이 있습니다. 온 세상이 무너지더라도 상관없고 자신의 관심사만을 찾고 거기에 몰두하는 아들을 세상과, 사람들과 만나게 하기 위하여 부모는 아들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몇 시간씩 가만히 앉아 있는 아들 곁에서 똑같이 가만히 앉아 있다거나, 자신의 세계에 몰입한 채, 의미 없는 몸짓만을 계속 되풀이하는 아들 곁에서 부모는 아이를 따라하며 눈높이를 맞춥니다. 아들과 일치하려는 노력이 아들의 생각과 관심을 조금씩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고 부모는 아들이 자신만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길을 열어줍니다. 물론 몇 년이라는 긴 시간을 한결같이 아이의 생각과 관심에 눈높이를 맞춘 결과였습니다.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이유는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서도 아니고, 인류를 대신해서 죄를 씻기 위함도 아닙니다. 이렇게 하여라 하며 모범을 보이기 위함도 아닙니다. 자신의 세계 속에 머물고 있는 자폐 아들과 눈높이를 맞추던 부모처럼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찾아 그렇게 낮아지십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허덕이고 있는 우리들과 눈높이를 맞추시는 한없는 낮아짐, 겸손의 모습입니다. 사람들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고자 하는 하느님 사랑의 드러남입니다.

하느님의 겸손은 예수님의 삶 전체를 통해 면면히 드러납니다. 구유에서 탄생하시어 죄인들과 세리들과 창녀들과 어울리며 그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모습, 급기야 겟세마니 동산에서의 고뇌를 거쳐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는 모습이 그러합니다. 죄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죄인인 인간과의 완전한 일치를 향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본래의 창조된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나야함을 가르쳐 줍니다.

세례 때 하느님을 믿으며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기로 다짐했던 그 약속을 매일매일 살아내는 것이 하느님의 겸손에 대한 우리의 응답입니다.

어떤 사람이 야훼의 산에 오르랴? 어떤 사람이 그 성소에 들어 서랴?
행실과 마음이 깨끗한 사람, 허망한 데 뜻을 두지 않고 거짓 맹세 아니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야훼께 복을 받고 하느님께 구원받을 사람이다. (시편 24,3-5)

* 해군교육사 성당 김준래(마르띠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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