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세례를 통하여 당신의 공적 활동을 시작하셨다. 우리에게도 세례는 새 생명의 시작이며, 새 삶의 시작이다. 예수님의 세례가 십자가 위에서 완성되었듯이 우리의 세례도 일생을 통해 완성되어야 한다.
1. 주님의 세례는 예수님의 사생활과 공생활을 가르는 분기점이었다
세례축일은 가나 혼인잔치의 첫 기적과 함께 예수님이 누구 신지 그 정체를 온 세상에 공적으로 드러내는 또 하나의 공현(公現)이라 할 수 있다.
세례축일이 예수님의 생애 안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암울한 군사 독재 시대를 지나면서 한 두 번쯤 민주화 투쟁을 하면서, 운동장에 모여 선언문이나 성명서를 낭독하고 구호를 외치며 전의(戰意)를 불태운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를 '출정식'이라고 한다. 출정식은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 왜 이런 일을 하는지를 확인하는 자리인 것이다. 오늘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다. 예수님의 세례는 30년 간의 사생활(私生活)을 마감하고, 당신의 사명을 이루기 위한 공생활(公生活)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세례를 통하여 당신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명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이제 그 출발을 하시는 것이다.
2. 예수님이 세례 때 확인한 당신의 사명은 무엇인가?
오늘 1독서에는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믿어주는 자, 마음에 들어 뽑아 세운 나의 종이다, 그는 나의 영(靈)을 받아 뭇 민족에게 바른 인생 길을 펴 주리라."(이사 42,1) '야훼 종(ebed Yayweh)의 노래'의 한 부분이다. 이사야서에만 이 '야훼 종의 노래'가 네 번이나 나온다. (42,1-9; 49,1-6; 50,1-11; 52,13-53,12)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종(ebed)'이라는 단어는 '노예'라는 뜻으로만 쓰인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모세, 모든 예언자들을 '야훼의 종'이라고 지칭할 때도 사용된 단어이다. 이 '종'이라는 단어는 아래로는 노예뿐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다음으로는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리고 위로는 메시아에 이르기까지를 다 지칭하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 들려온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하신 장면에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란 말은 '내 사랑하는 종'이라고 할 수 있는 같은 단어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시면서 이사야가 말한 '야훼의 종'으로서의 삶을 살도록 불림을 받았다고 확신하신 것이다. 그러면 이사야가 말한 '야훼의 종'은 어떤 사명을 지닌 분인가? 오늘 제 1독서는 "너는 만국의 빛이 되어라. 소경의 눈을 열어주고 감옥에 묶여있는 이들을 풀어주고 캄캄한 영창 속에 갇혀있는 이들을 놓아주어라."(이사42,6b-7)하며 야훼 종의 사명을 밝히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세례 때 확인한 당신의 사명인 것이다. 이는 또한 예수님이 자기 고향 나자렛 회당에서 확인한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을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에게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는 것"과 같은 사명인 것이다.
3. 세례 때 받은 예수님의 사명은 십자가 위에서 완성되었다.
'고통받는 야훼 종'은 자신을 바쳐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느님의 종이다. 예수님은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이 일을 다 겪어낼 때까지 내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지 모른다."(루가 12,50)고 하신 적이 있다. 이는 분명 당신의 십자가상의 죽음의 세례를 두고 하신 말씀이다. 세례 때 받은 당신의 사명을 위해 온 이스라엘을 동분서주하시며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셨다. 인간적으로 도망치고 싶은 두렵고 힘든 사명이었지만,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루가22,42) 하시며 당신의 사명에 충실하셨다. 예수님은 당신이 '고통받는 야훼의 종'으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묵묵히 끌려가.... 죄인들과 함께 처형당할"(이사537-10참조)것임을 아셨고, 끝내 그 길을 가셨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이제 다 이루었다."(요한19.30)하시며 숨을 거두셨다.
우리가 받은 세례의 의미도 바로 예수님의 세례와 같은 것이다. 우리는 세례로 그분의 지체가 되었다. 모든 성사(聖事)가 그렇듯이 세례도 종말론적인 것이다. 세례를 받으면 이미 그리스도의 제자이지만 너무나 부족한 제자인 것이다. 죽는 날까지 세례를 완성해가야 한다.
때로는 각박하고 힘든 현실을 내팽개치고 어디론가 훌훌 도망쳐버리고 싶은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기적인 나는 죽고, 세례로 예수 안에 새로 태어난 생명을 키우고 완성해야 한다. 우리는 매일의 삶 안에서 묶은 껍질을 벗으며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 사랑과 봉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나날이 새 생명으로 새로 나야 할 것이다.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는 광경은 참으로 신비한 일이다. 우리도 매일의 삶 안에서 세례로 받은 천상 생명의 씨앗을 싹틔우고 가꾸어야 한다. 새로 태어남의 세례를 매일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마지막 죽음의 세례 때 모든 죄의 허물을 벗고, 부활한 예수님이 들어간 그 생명의 나라로 갈 것을 믿는다. .
* 마산교구 유영봉 신부
신앙생활은 세례를 완성하는 생활
2005. 1. 10. 오후 2: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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