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세례 축일<학생>

2005. 1. 10. 오후 2:24:12

글자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이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아는 사랑밖에는 모르시는 분으로 표현되고 있고 우리를 그 사랑에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세례의 의미와 세례자 요한의 겸손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메시아시대의 도래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메시아가 도래하면 어떤일이 일어나는가? 오늘 1독서에서는 메시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메시아의 시대가 도래하면 메시아는 소경들의 눈을 열어주고 감옥에 묶여 있는 이들을 풀어준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를 구속하는 것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어떤 학생은 이런생각을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나를 구속하고 있는 지겨운 시험과 보충수업등에서 나를 구하소서. 아마 이런 청은 안들어주실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2독서에서는 예수님께서는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해주시고 악마에게 짓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1독서에서 이사야가 예언한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두 이루어 졌다는 것. 따라서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베드로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이 나옵니다. 루가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세례를 통해서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이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3장 22절의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은 예수님이 바로 세상을 구원하실 분이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례를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1독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갈대가 부러졌다하여 잘라버리지 아니하고, 심지가 깜박거린다 하여 등불을 꺼버리지 아니하며, 성실하게 바른 인생길만 펴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는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시고 그것마저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 잘났기에 예수님의 사랑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개인적으로 자신이 보기에는 다 내세울 것이 있고, 잘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저와, 별것도 아닌 여러분이 우리가 아무리 잘났어도 예수님의 발바닥의 때만큼이라도 되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무엇때문이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런 사랑을 본받아야 합니다.

  옛날에 눈먼 소년과 귀머거리 소녀가 사랑을 했습니다. 둘은 너무 사랑해서 항상 같이 있었습니다. 그들만의 나무아래서 눈먼 소년은 매일 그 소녀에게 시를 써서 읽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소녀는 듣지를 못했습니다. 귀머거리 소녀는 매일 소년을 위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소년의 아름다운 모습을 화폭에 담아서 소년에게 보여주며 사랑을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그 그림을 볼 수 가 없었습니다. 소년과 소녀의 애절한 사랑은 하느님을 감동시켰고, 마침내 하느님이 천사를 불렀습니다. “가서 저 젊은 두 연인의 소원을 이루어 주고 오도록 해라”. 천사는 먼저 소녀에게 갔습니다. 소녀여!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인디 그대의 아름다운 마음에 감동되어서 당신의 소원 한가지를 들어주려고 왔습니다. 소원을 말해보시오!

질문: 소녀의 소원은 무엇일까요?, 그러면 소년의 소원은 무엇일까요?

그러자 소녀는 천사님 제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제가 사랑하는 소년이 계속 장님으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만일 소년이 눈을떠서 나의 추한 모습을 바라본다면, 그리고 나보다 더 예쁜 애들을 본다면 소년은 저에게서 떠나갈 것입니다.  

천사는 무척 실망했습니다. 실망한 천사는 이번에는 소년에게 갔습니다. 헤이 소년! 난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인디 소원하나 말해봐 내가 들어줄게. 그러자 소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사님! 전 소원이 없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만 옆에 있으면 됩니다. 한가지 소원이 있다면 그 소녀가 계속 귀머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을 듣는다면 그녀는 그에게로 떠나갈 것입니다.

천사는 또 한번 실망하고 그냥 하늘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소년과 소녀는 무척 사랑하는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사랑은 너무 이기적이었습니다. 내가 소년과 소녀였다면 어떤 소원을 말했을까요?

성숙한 사랑이란 나를 위해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서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랑도 노력없이는 성숙될 수 없습니다. 항상 상대방을 위해서 배려하는 것. 먼저 상대방을 생각하는 것. 이것이 필요합니다. 눈먼 소년과 귀머거리 소녀가 이렇게 했더라면 그들은 눈이 열리고 귀가 뚤려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고 귀 기울이면서 행복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보면 혜성이가 엄지한테 이렇게 말합니다.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디 할 수 있어” 그리고 엄지가 자신의 남편인 마동탁을 위해서 한번만 져달라고 부탁하자 그것마저도 들어줍니다. 여러분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서 잠시 예수님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러진 갈대의 마음과, 깜박거리는 등불의 심지의 마음도 헤아리시는 예수님은 모든 것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자신이 부러진 갈대요 깜박거리는 등불의 심지라고 생각해 본다면 더 쉽게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다리도 짧고, 앉은키나 선 키나 비슷하고, 공부도 못하고, 얼굴도 못생겼다고 합시다. 아니 다른 사람이 그렇다고 합시다. 성질도 더럽고, 이기적이고, 혼자 잘난체 한다고 합시다. 여러분은 그런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상대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다고 해서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까지도 사랑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아무것도 아닌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마져도 내놓으신 분이십니다. 그런 예수님께 우리도 사랑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혜성이가 엄지한테 말하듯 우리도 예수님께 “ 예수님 전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세례자 요한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보다 먼저 오셔서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셨고, 예수님께 세례도 베풀었습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을 그리스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세례자 요한은 그분은 나보다 더 훌륭한 분이어서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즉 그분의 시종이 될 자격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라고 겸손되이 말씀하십니다. 만일 내가 세례자 요한이고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흠숭을 받고 있다면 사람들이 당신이 그리스도 이십니까? 라고 물을 때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지 친구들끼리 얘기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리하자면 오늘 독서와 복음은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시며, 무지무지하게 우리를 사랑해 주신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분 사랑에 응답해야 하며, 세례자 요한처럼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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