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생명은 어디에?

2010. 4. 9. 오전 8:07:23

글자



Christ's Descent into Limbo(저승으로 가신 그리스도),12-13세기 프랑스

트라피스트에서 보내는 2007년 4월의 말씀

참생명은 어디에 ?


그림을 그득 채우며 덮칠 듯한 기세로 덤벼드는 괴물이 섬뜩하게 우리의 시야를 채웁니다.  괴물이라기보다는 어떤 세력이나 힘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을 듯합니다.  
인간의 모든 고통, 공포, 두려움, 광기, 슬픔, 비참, 병고 등의 마지막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 피해갈 수 있다 하더라도 죽음만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두려움의 바닥은 죽음에  가닿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음은 인간에게서 생명과 아름다움과 젊음, 재산과 지위, 사랑하는 이들을 앗아가 버리고 말 뿐 아니라 그것이 언제 다가올지 예측도 할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인간은 죽음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은 허무로 끝나버리고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던 왕들도 불로장생약을 구하지 못해 시골의 이름없는 촌부와 같이 깊디 깊은 구렁으로 내려가야만 하는 현실 앞에 모든 종교와 철학은 그 해답을 얻고자 노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예수의 자세는 철저하게 수동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관해 묘사할 때 “넘겨지다”라는 수동형 동사를 사용합니다.

일생 소명인 하느님 나라 설파가 당시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어 처참하게 죽음을 당해야 하는 그 현실을 일찍 알아차렸지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적대자들을 쳐부수고 자신의 길을 고수하거나  소명의 길을 포기하거나 함이 없이 그저 그렇게 걸어온 그 길을 담담히 가셨습니다.  죽음의 고통과 함께 침뱉음, 모욕, 모든 꿈의 상실, 사랑하는 이들의 배반 등 인간 고통의 가장 밑바닥에서 그것을 수용하십니다.  
아무 희망이 없는 죽음, 하느님의 아들 -고대하던 메씨아가 그런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이 예수를 하느님께서 부활시키셨고 온 인류의 머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드디어 인간에게 죽음조차 꺾지 못할 생명이 주어진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승리하였습니다 !  그래서 우리의 현재 생명에는 이미 부활의 싹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림에서 보면 예수님의 두 발은 활기차게 땅을 딛고 몸 동작도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인간 군상들은 온몸이 마비된 듯 뻣뻣하고 자유스럽지 못합니다. 어떤 이들은 아직 서지도 못한 채 죽음의 힘에 사로잡혀  널부러져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마비되어 생명이 활기차지는 못할지라도 온 힘을 다해 시선을 그분께 두고 예수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진정 죽음의 힘의 위협을 느낄 때야 인간은 생명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마치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조절할 수 있기라도 한 듯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진정 참 생명은 예수님께만 있음을 얼마나 많은 순간 자각하고 있습니까?  
죽음의 힘이 아무리 거세어도 예수 그리스도 이미 부활하셨고 우리의 몸에는 그 부활의 싹이 자라고 있음을 경험하십니까?  
이 그림은 양쪽 모두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즉 죽음의 힘의 엄청남과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생명입니다.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생명의 질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사뭇 다른 것 같습니다.  광기와 두려움으로 가득 찬 삶은 죽음보다 낫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이 지상에서 죽음의 마비와 경직을 벗어나 하느님의 생명의 힘참과 자유로움을 이미 누리고 있는 생명도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두 눈 부릅뜬 괴물같은 이 죽음의 힘을 소스라치게 느껴볼 필요가 있습니다.  참생명이 그립다면 죽음의 끔찍함도 대면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참생명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망을 잃고 절망의 구렁에서 살아가고 있는지요.
우리 곁에도 조금만 관심을 돌리면 우리의 기도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희망을 잃은 모든 이들이 희망을 되찾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함께 기도하는 곳에 사랑이 움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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