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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서 13장은 이성과 신앙의 관계를 언급할 때, 곧 인간이 자연적인
이성의 빛만으로도 하느님을 알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논할 때 늘 인용됩니다.
물론 하느님에 대해서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많이 알 수는 없겠지만, 하느님께서 계시다는 사실만큼은 깨달을 수 있지요.
이미 신앙을 가지고 있는 우리도, 우리를 둘러싼 삼라만상을 바라보면서
하느님을 발견하고는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말하네.”(화답송 후렴)
하고 노래합니다. 피조물을 바라볼 때 그것을 만드신 분이 계심을 생각하고,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그것을 만드신 분을 압니다.
스토아 철학도 만물 안에 내재해 있는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만물의
이 아름다움을 신이라고 하면서 유일하신 하느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범신론
또는 다신론에 빠지고 말았지요. 그러나 지혜서는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하느님의 빛, 곧 성령의 빛을 받아 아름답게 보인다고 선언하면서
(지혜 11,26ㅡ12,1 참조) 범신론의 맹점과 한계를 극복합니다.
그런데 이 지혜서 13장은 다른 민족들의 우상 숭배를 논박하는
맥락 안에 들어 있습니다. 해와 달을 섬기던 고대 동방의 사람들과
동물을 숭배하던 이집트인들을 지혜서는 악하다고 하기보다는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아둔하고 깨닫지 못한다는 뜻이겠지요.
피조물을 보면서도 그 창조주를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돌려서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해나 달이나
동물을 신으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느님만큼이나
절대로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들도 적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삶 안에서 내가 추구하는 것, 아니면 내가 양보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
이것을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은 다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 모든 것, 그것을 만드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고 그것을 주시는 분도 하느님이심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혜서는 우리를 아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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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그날이 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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