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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강아지 또는 잃어버린 만 원권 지폐를
다시 찾았을 때의 기쁨도 상당하지요.
그런데 오늘 복음 말씀이 그리 탐탁지 않게 생각된다면,
아마도 하느님의 계산법과 인간의 계산법이
달라도 너무 많이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보다 의인 아흔아홉 명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생각과 계산법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순전히 인간적으로만 생각하더라도, 하느님께서 공정하신 분이라면
처음부터 의인이었던 이들에게 더 큰 상을 주셔야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한다고 하십니다.
사람은 죄인을 포기할 수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결코 그를
외면하거나 포기하지 않으시는 자상하시고 한결같으신 분이십니다.
되찾은 양과 되찾은 은전에 대한 말씀
다음에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가 나옵니다.
그 비유에서 아버지는 착실한 큰아들보다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작은아들 때문에 더 기뻐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큰아들임을 자처하며
하느님의 처사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분이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마음대로 형제를 평가하고 심판할 수 없는
이유를 밝혀 줍니다.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죄인이라고 손가락질받는 그 사람도 주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대의 형제를 심판합니까?”
바리사이 출신으로서 그들의 논리와 사고방식에 익숙하던 바오로가,
죄인과 이방인들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바꾸는 것이 쉬웠을 리가
없었겠지만, 그는 과감하게 자기 입장을 바꾸었습니다.
당신 죽음과 부활로 죄인을 의롭게 하시는 예수님을
그가 인격적으로 뜨겁게 만났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각도 그렇게 바뀌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우리를 그렇게 변화시켜 주고 성장시켜 주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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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내가 길을 잃고 헤매일 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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