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오늘 복음은 유다가 주님을 팔아넘기려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여 주며 때는 '밤'이라고 합니다.
밤이 너무 깊어져 낮이 있었음을 기억하기조차 어려울 때,
빛이 다시 비추리라는 것을 기대하는 것마저 포기하려 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파스카 성삼일의 신비를 절실하게
체험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합니다.
유다를 둘러싼 밤은 그의 마음의 밤이기도 했습니다.
희망을 생각할 수 없게 하는 캄캄한 절망의 밤,
두려움과 위협과 폭력과 악의가 가득한 밤에 자신을 송두리째 넘긴
사람의 마음은 그 자체로 그러한 밤이 되어 버립니다.
유다의 불행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굳게 닫힌 밤 속으로 온몸을 던지는 상황,
그래서 예수님마저 그를 애처롭게 여기시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실 수 없는 그 완전한 절망의 마음이 두렵습니다.
이것이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다는 성경 말씀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망의 밤은 차가운 침묵의 밤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세상살이에도 밤과 침묵을 대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밤과 침묵이 우리를 절망으로 이끌도록, 부르짖음은 답 없는
메아리로 돌아올 뿐 아니라 희망은 영원히 차가운 어둠 속에 묻힌 채
질식되는 것이 우리 삶의 숙명이라는 속삭임이 악마의 목소리입니다.
현대의 심오한 영화로 유명한 스웨덴의 영화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은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 '겨울 빛', '침묵'으로 이어지는
자신의 영화들에서 '신의 침묵과 인간의 절망'이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고통을 주제로 삼았습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가톨릭 작가 조르주 베르나노스는 그의 대작
『사탄의 태양 아래서』라는 책에서, 죄의 무게가 모든 빛을 차단하고
자기 자신을 포기하게 하는 유혹으로 이끄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위대한 예술가들이 예감하였듯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우리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밤과 침묵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부활의 신비를 믿는 사람은 밤에서 빛과 생명을 발견합니다.
부활은 절망과 죽음의 모든 힘을 잃게 하는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그 부활의 길은 우리가 놓여 있는 밤과 침묵을 통하여 나 있습니다.
그 밤은 결코 빛이 사라진 곳이 아니라 빛을 기다리는 희망의 밤입니다.
침묵은 영원히 답 없는 공허와 절망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겉꾸민 해답이 아닌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리를 치유하시는
사랑의 주님을 소리 없이 체험하는 자리입니다.
빛에 대한 희망으로 이렇게 우리는 밤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
-출처 매일 미사-
♬ De noche iremos 어둔 밤속 우리 가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