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2014. 4. 6. 오전 5: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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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여러 대목에서 우리 각자의 인생살이를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보편적인 인간의 운명에 대하여 신앙인의 관점에서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할 때 가끔 떠오르는 것이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유명한 소설 『죄와 벌』입니다. 주인공 라스콜니코프와 창녀 소냐의 만남에서 오늘의 복음 말씀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의 잘못된 철학과 자격지심, 오만함이 결부된 악의 포로입니다. 그러기에 전당포의 노파를 살해하고도 그 죄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불안과 자신 안에서 조금씩 싹트는 죄의식을 부정하는 자신의 철학에 대한 의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가까스로 지탱해 온 그의 세계관은 마침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바로 젊은 여인 소냐에게 감동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비록 생활고 때문에 몸을 팔아야 하는 가련한 신세이지만 순수한 믿음과 영혼을 지닌 여인이었습니다. 소냐를 찾아간 주인공이 그녀의 발에 입을 맞추며 이렇게 말하는 장면에서 그의 변화가 잘 드러납니다. "나는 당신에게 절한 것이 아니라 온 인류의 고통에 절을 한 거요." 그리고 그는 소냐의 서랍장 위에 있는 낡은 『신약 성경』 한 권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갑자기 라자로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 달라고 청합니다. 잠시 주저하던 소냐는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요한 복음서의 대목을 천천히 읽어 줍니다. 작가는 여러 면에 걸쳐 이 성경 이야기를 그대로 인용하면서, 말씀을 읽는 순결한 '매춘부'와 말씀을 듣는 비참한 '살인자'에게 이 말씀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놀랍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소냐처럼 무겁디무거운 인생의 짐과 고통으로 말미암아 무덤에 갇힌 것 같은 신세이든, 라스콜니코프처럼 자신의 아집과 악행으로 스스로를 영적으로 죽이고 무덤 속에 웅크리고 있는 신세이든, 그것의 어느 정도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하시는 예수님의 이 외침은 바로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우리에 대한 말씀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 내 생명 주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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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것이다.14.04.08조회 44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14.04.07조회 39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4.04.06조회 38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14.04.05조회 45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14.04.04조회 48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14.04.03조회 59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14.04.02조회 47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었다.14.04.01조회 43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14.03.31조회 44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이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14.03.30조회 43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14.03.29조회 36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니,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14.03.28조회 37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14.03.27조회 42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14.03.26조회 32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14.03.25조회 32예수님께서는 엘리야나 엘리사처럼 유다인들에게만 파견되신 것이 아니다.14.03.24조회 33솟아오르는 영원한 생명의 샘물14.03.23조회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