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복음 묵상 : 크리스챤은 말씀을 경청하는 '제자'들...

2010. 7. 19. 오후 11:39:51

글자

-크리스찬은 하느님의 '말씀'을 언제 어디서나 경청하는 제자로서의 자세를 지켜,
 ('신앙의 유비'로써) 하느님 구원경륜에 도달하려 해야-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루카 10,38-42-

예수님은 '말씀에 대한 제자로서의 경청의 자세'가 좋은 몫이라고 하셨다.
-마리아처럼 가까운 발치에서든, 마르타처럼 먼 발치에서든-
언제 어디서나 어떤 경우에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들으려는 경청의 자세가,
에수님의 제자인 크리스챤의 기본 자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언제 어떤 경우에서도, '말씀'을 경청하는 (*기도의) 자세를 지켜서,
성령과 함께,
'말씀'을 통하여 하느님의 구원 경륜을 제대로 깨달으려는 사람들,
곧, '신앙의 유비'로 믿음에 도달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의 발치에 있지 않는 분들이
일상의 경험적(행동-실용)-이성적(합리-관념)-언어적(구조-전체) 활동들로 갖는 몫인
이런 저런 이 '세상의 유비'로 인한 깨달음들이,
하느님의 구원 경륜을 전혀 말해주지 않는 것은 아닐지라도,
원죄적 상태에 놓여 있는 이 세상에서 '말씀'을 제대로 깨닫기 위한,
'그리스도의 제자여서 좋은 몫'은 되지 못하기 때문에......

행동의 자기중심적 유혹에, 이성의 낮은 차원에, 언어의 양날의 폭력성에... 지쳤을 때,
문득 언젠가 마음에 다가왔다고 생각되는 ‘말씀’이... 새롭게 다시 마음에 다가오는 체험들...

-마리아와 마르타는 예수님 가까운 발치에 있다거나 먼 발치에 있다는 정도의 차이이니...
-예수님 입장에서는 다 좋은 몫이실 듯...
-'맛있는 좋은 나눔'이 전제된... 음식 '요리'와 말씀 '요리'는 결국 같은 것이니...
-슈브리에 신부님의... ‘사제는 맛있는 빵’이라는...
-성체 모신 감실 앞에서의 복음 묵상을 통한 깨달음이 떠오르는 성경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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