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02. 20 묵상, 2010. 04. 29 최종정리>.
사순제1주일 루카복음서는,
주님께서 받으신 유혹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계속 커져갔다는 큰 스케일로 제시하고 있다.
-'육신적인 배고픔(결핍)의 극복'은
인간 개개인의 육신-욕망 차원에서 '빵의 기적'이라는 유혹을 부른다.
-'세속적인 세상 명성의 획득'은 (*서양적 명성=동양적 입신출세=카이사르의 것)
인간 개개인도 넘어서는 이 세상의 국가-권력 차원에서 '권세와 영광의 기적'이라는 유혹을 부른다.
-'영신적인 권능의 행사'는
인간 세상도 넘어서는 '세계의 성전(공중의 우주)' 차원에서 '천사적 권능의 기적'이라는 유혹을 부른다. (*아마도 구약에서 말하는 '(우리가) 이 지상에서도 바벨탑을 쌓을 수 있겠다'는 유혹을 지칭하는 것일 것*)
(개인의 욕망=物慾<*풍요-결핍의 양면성> 그대로, 세상의 권력=權力慾<*명성-모멸의 양면성> 그대로, 공중-성전의 권세=權能慾<*권세-굴종의 양면성> 그대로)
(또는 하느님의 사랑-희망의 자리에다 육신적 욕망에 해당하는 충족-결핍을 갖다 놓고, 하느님의 자기비움-권력의 자리에다 세속적 권력에 해당하는 명성-모멸을 갖다 놓고, 하느님의 신의-나라의 자리에다 대신 공중의 권세자의 권능-굴종을 갖다놓는 이 세상의 유혹, 곧 인간의 원죄적 경향들...)
그래도 남은 유혹의 다음 기회란...
인간이 죽음을 맞으면, 그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지 않느냐 하는 것일 듯.
결국 '유혹자'들이란
하느님에 대해 적대적인 '인간-세상-우주적 환경들(*광야)'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겠다.
인간적인 족보로 따져 보면,
사람 중에서 '사람의 아들'이 아닌,
하느님과 직결되는 '하느님의 아들'은, 아담과 예수님 단 두 사람.
그런데,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낙원 체험에서) 아담은 악마의 유혹에 졌고,
(성령에 이끌려 받은 광야 체험에서) 예수는 악마의 유혹에 이겼다.
주님이신 예수님은,
시공간적으로 계속 커져 나가는 이 모든 유혹들-유혹자들을
다 넘어 서셨으니,
이제 주님을 따르는 우리가 할 일은,
그리스도 신비체의 지체임을 (제대로) 지켜서,
자기에게 주어지는 수준의 (결국 주님-성령이 이끄시는 광야에서의) 유혹들을
주님과 함께 넘어 서는 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