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거둔 이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이도 모자라지 않았다>
우리 ‘참 제자 모임’ 덕분에, ‘성경 묵상’과 함께 하는 ‘성체 조배’, 그리고 생활 ‘나눔’에 맛들이게 된 것은, 나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이제까지 배워왔던 신앙이지만, 지금 새롭게 깨달아가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특히 “말씀에서 오는 영감과 인간에서 오는 환상”이라는 언젠가 피정 주제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지식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 마음으로는 아직 깨닫지 못했던 사실들... 나와는 많이 다르지만, 생활과 말씀이 그대로 결합되어 나타나시는 형제 자매님 모습들... 발견하고, 감사하고, 스스로를 다시 음미해 보는 시간들...
그래서인지 마지막 날에는 자기 이웃의 형제 자매에게 나누어 준 사실로써,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빌리면, “가난함으로써 부유하게 되는” 사람들을 ‘의인’으로 판정하시겠다는 ‘말씀’ 들이 더욱 실감난다.
유대인들이 말하던 형제 자매는 원래 유대인들만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의 예언자 에제키엘은 “잃어버린 양, 흩어진 양, 부러진 양-아픈 것으로 비유되는 사람들”을 바로 자기 이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진정한 유대인이라고 생각했다. 유대인 사회는 유목사회에서 출발했으므로.
중국인들의 큰 스승으로 ‘군자와 대장부’를 가르친 맹자는 “홀아비(鰥), 과부(寡), 고아(孤), 독거노인(獨)”을 바로 자기 이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진정한 중국인이라고 생각했다. 중국인 사회는 농경사회에서 출발했으므로.
그런데 예수님은 내 이웃, 내 형제는 바로 ‘가난한 자’에게 해 주는 ‘모든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이 가장 먼저 생각하신 사람들은 가장 작고 가장 가난한 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를, 마태오는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서부터 복음이 전해졌다고 썼다.
복음에서는 이를 “굶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이방인), 헐벗은 자, 병자, 수감자들에 대한 선행(나눔)-자선 행위”로써 특히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구약’에서 말하는, 고아 교육하기, 죽은 자 장례 지내기, 곧 유대인 형제로서 일부 무의탁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빠져 있다. 그 대신에 ‘감옥에 있는 자’에 대한 나눔-자선 행위가 새롭게 들어갔다. 이는 아마도 세계제국 ‘로마’의 권력으로 해서 가난해진 자들, 이른바 ‘카이사르’에 저항하다가 돈-권력들에 희생됨으로써 결국 무의탁자가 된 사람들이 하나 더 포함된 셈이다.
나의 이웃 중에서 가장 가난한 자에 대한 선행(나눔)-자선에 대해서 성체조배 중에 묵상하면서 얻은 생각들은 다음과 같다.
나의 이웃-형제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베푸는 선행(나눔)-자선은, 결국 그 사람이 사는 바로 그 사회에 따라서 그 사람이 현재 살아가는 바로 그 당시 현실 처지에 따라서 느끼는, 그 '가난-결핍'을 채워주는 행위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인간 생명-존재에 대한 결핍이란, 결국 자기의 생명-존재를 알게 해 주는 부분에서 모두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몸'의 차원, '영'의 차원, 그리고 ‘이름’의 차원이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모두 나타날 것이다. 살아가는 장소와 시절에 따라서, 우리 이웃 중에서 가장 가난한 자들은 현실에서는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겠지만...
나 자신은, 이름-몸-영 중에서, '몸'의 결핍보다 '이름' '영(마음)'의 결핍에 대한 관심이 훨씬 더 컸던 듯하다. 이는 4계절이 분명한 동아시아의 논리로 따져보면, '생명(生命)의 봄, 성장(成長)의 여름'에 속하는 사람들을 주 대상으로 하는 '교육'을 직업으로 하는 처지 탓인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나와 만나고 스쳐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할 때, 마지막 '버팀목' 정도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희망)이 이제까지 자선-선행으로 가는 내 자신의 길을 이끌었던 듯하다. 나 스스로는 이제 '몸'의 생명을 거두어 가는 ‘결실(結實)의 가을, 퇴장(退藏)의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새삼 절실하게 느끼고 있지만...
요즈음은 유목 시대도 농경 시대도 산업 시대도 넘어서고 있다. 이른바 세계화-정보화 시대이다. 이 시대는 인터넷 시대로 상징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인터넷 영역에서는, '몸'의 친교보다 '이름-영'의 친교가 더욱 크게 느껴져 간다. 그만큼 그 결핍 현상도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른바 ‘돈’만이 인간의 가난-결핍이 아니라는 사실들... 예컨대 인터넷 나눔(친교)으로 인한 새로운 여론의 예상을 넘어서는 쉽게 정화되지 못하는 충격파들... ‘이른바 악플로 인한 자살’ 등 새로운 병리 현상의 거친 충격파들...
오늘 이 자리의 ‘가난-결핍’들과, 오늘 이 자리의 ‘선행(나눔)-자선’들 역시, “많이 거둔 이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이도 모자라지 않았다”(코린토2서, 8장 15절)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에서 느껴지듯이, ‘자발적 열의’에 어울리고, ‘스스로의 형편’에 따르는 선행(나눔)-자선을 바탕으로 하는 사람들의 ‘친교’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