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살 -이난호 짓다 님

2009. 4. 13. 오후 3:49:43

글자
 
        엄 살
                                        이 난호 짓다
 
    2009 년 2 월 18 일, 김 수환 추기경 선종 사흘 째 날.
 
    暮冬 오후, 한 빛으로 무직하게 얼부푼 얼굴들을 3 십여 분 거슬러서야 2 천 여 미터 조문 행렬 꽁지에 붙어 섰습니다.
 
 
    거기 끼어 당겨지는 대로 밀리는 대로 몸 맡기고 책을 읽었습니다. 금세 까마득해지는 내 꽁지를 달고 명동 상가골목에서 꺾였다가 다시 굽이쳐 지하철 명동역을 지나 세종호텔을 돌았지만 아직도 두어 번 더 느슨 목넘이를 해야 명동성당입니다. 기도 송 한 줄 소리 내는 이 없이 소복 입은 표정들이 조용히 밀립니다.
 
   어떤 음식점은 유리문에 조문안내 지도를 그려 붙이고 조심스레 음식 냄새를 내보냈습니다. 또 어떤 찻집 소녀는 실내 온기가 송구한 듯 가라앉은 시선마저 비켰습니다. 내 앞을 가로지르게 되는 행인들은 되레 먼저 고개를 수굿수굿 했습니다. 실로 모처럼 은연한 저들 나름의 조문, 머리 더 숙여 기도로 받았습니다. 저들 비록 목 깊은 안쪽에서 사무치지 않았더라도 잠깐 다소곳한 그 미쁨에 나 절로 팥알만큼 오므려지는 겁니다.
 
 
   그럴 줄이야!
   가만히 내려놓은 누군가의 한 올 숨결이 地殼을 뒤집는 회오리일 줄이야. 낯선 옆 사람 옆 사람 서로서로 나직나직 주고받는 滯내리 告解들으며 이리 순순히 발가벗고 싶어질 줄이야. 아, 묵정밭 깊숙 깊숙 객토 당할 큰 용기, 내게 있을 줄이야.
 
 
    세 시간 반 만에 책을 접었습니다. 시린 손 위, 정수리 위, 어슬녘 바람 그 위, 서울 복판을 그어가는 검은 새 한 마리 보았습니다. 소리 없이 횡으로 그어가던 검은 줄이 문득 내 앞에 곧추섰습니다. 머뭇거리지 마라 까악, 지금 하라 까악, 사랑하라! 용서하라! 감사하라! 까악 까악 까악. 행복하여라, 끄으악!
 
    나는 거푸 뜨끔거립니다. 내 기도 얼마큼이 엄살이었나, 내 용서 얼마큼이 변덕이었나, 내 나눔 얼마큼이 시늉이었나. 도대체 내 사랑 얼마큼이 욕심이 아니었나. 그리고는 염치없이 온 몸을 귀로 열었습니다. 더 염치없이 들었습니다!
 
 
    네 엄살이 기도다!
    지금 네 시린 열 손가락이 기도다!
 
 
    실눈도 안 뜨고 나를 통째 보아버렸나 봅니다.
    하얀 제의 하얀 모자 검은 구두차림으로 유리관에 가로 누운 그분!
    엄살이 빠진 기도만 추려지는 줄 알았습니다.
    행렬에 밀리며 당겨진 게 어찌 기도이랴 싶었더랬습니다.
 
 
    말문이 막혀 마지막 엄살을 못 합니다.
    김 수환 추기경님 안녕히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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