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2006. 12. 31. 오전 12: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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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2006년 4월 2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위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뵙고 싶어 하는 그리스 사람들에게 간접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이 사람들은 아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백성들이 그분에게 보여 준 환호(바로 앞 대목 요한 12,12-19)에 깊은 인상을 받고 예수님을 따르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그들에게 무척 뜻밖이었을 것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군중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던 그분이 당신의 죽음에 대하여 말씀하시며, 당신을 진정 따르려면 당신처럼 “땅에 떨어져 죽어 많은 결실을 맺는 밀알”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형벌을 받으시는 것을 ‘영광스럽게 되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는 시간이 바로 성부 하느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구속사업을 완성하시는 시간이요(참조 19,30), 그러기에 하느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시간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아무런 고뇌도 없이 죽음을 맞이하셨다고 요한 복음사가가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도 예수님이 죽음을 앞두고 크게 고뇌하셨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아버지, 이 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오늘 복음과 제2독서(특히 히브 5,7)에 나오는, 수난과 죽음을 앞두시고 고뇌하시며 간절히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구원자’의 모습이기에는 너무나 나약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리셨던 그분이 “부활하여 살아 계시다”는 것을 체험한 초창기 신앙인들과, 그들의 증언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임박한 죽음을 앞두고 고뇌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인류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한없는 사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듯한 일을 앞두고 극심한 고뇌에 휩싸여 있을 때,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면서도 그토록 깊은 고뇌를 하시며 기도 중에 하느님 아버지께 온전히 의탁하시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시려고 노력하시던 예수님을 기억하며, 신앙으로 그 어려움들을 극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벌써 사순 제5주일입니다. 성주간이 이제 한 주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의 사순 시기를 어떻게 지내왔는지 점검해 볼 때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처럼 “땅에 떨어져 죽어 많은 열매를 맺는 밀알 하나”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얼마나 살아 있습니까? 밀알은 땅에 떨어져 땅 속에 묻혀 죽을 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고, 그렇게 하여 그 생명은 풍요롭게 계속됩니다. 그러나 떨어져 죽지 않으려고 바둥거리면, 한 알 그대로 남습니다. 아무런 결실도 없이 그야말로 ‘외톨이’가 되어 홀로 남아 뒹굴다가 결국에는 새들의 먹이가 되거나 지나가는 수레바퀴에 밟혀 으깨져 버리기 쉽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눈앞에 보이는 자기이익에만 매달리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희생은커녕 양보조차 조금도 하지 않고 살려다보면, 결국 그런 인생에서 남는 것은 ‘공허함’뿐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의 인생만 공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가 몸담고 있는 사회도 공허하게 만들고 삭막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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