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에게 시중드는 주인 -2006년 1월 29일
여러 문화와 종교가 보아 온 노동관은 일반적으로 인간의 육체 노동을 경시하여 노예들의 몫으로 돌린 경향이 큰 것 같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리스도교 문화만은 창세기로부터 일관되게 ‘인간은 노동으로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참여하도록 불리운 존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직접 노동자로서 육체 노동을 하셔서 이제 인간은 일로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동참하도록 사명을 부여받고 있습니다. 소년 예수님이 목수이신 아버지 요셉을 옆에서 도와 드리는 모습, 사고로 손가락을 다신 예수님을 끌어안고 애통해하시는 성모 마리아가 그려진 성화들은 ‘노동하는 인간’인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거룩하고 아름다운 빛을 주고 있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입니다”(요한 5,17).
오늘 예수님은 혼인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깨어 맞이하는 종들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종은 어떤 의무감 때문에 억지로 일하거나 엄격한 주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밤 늦게까지 깨어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인가 커다란 기쁨과 보람이 있기에 불철주야 자기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종은 여러 문화 안에서 살아온 노예의 비참한 운명과는 무관해 보입니다. 그에게 ‘종’이라는 칭호는 굴욕이나 자유의 박탈, 명예의 실추를 뜻하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입니다”(루카 12,37)고 말합니다. 그래서 주인이 종에게 시중드는 초유의 사건이 시작됩니다. 여기에서 종이 주인을 영예롭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주인이 종을 영예롭게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몸소 당신 종에게 당신의 구원 계획을 맡기시며, 이 종은 자신이 창조주이신 주님께 온전히 속함을 잘 알기에 순종으로 자신을 실현하고 완성해 갑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파견되시는 주님의 종이십니다(마태 12,17-21).
예수님은 하느님이지만 종이 되셔서(필리 2,6-8) 노예의 상태에 있던 우리를 온 우주와 이 세상의 주인인 당신의 처지로 올려 주십니다. 그래서 이전의 인간의 처지가 어떻든 상관 없이 이제 모든 인간이 하느님에게서 섬김을 받는 하느님의 종입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존재인 우리가 부여받은 ‘새로운 인간’의 신분입니다.
이 종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시간의 선용(善用)입니다. “저희의 날 수를 셀 줄 알도록 가르치소서. 저희가 슬기로운 마음을 얻으리이다”(시편 90,12). 구원받은 존재인 우리들에게 이 시간은 늘 구원으로 초대되는 때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단지 우리의 수명이 계속 더 연장됨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시간, 매순간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분께 다가가도록 응답할 때 영원한 생명은 이미 내 안에서 시작되기에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