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낚는 어부 -2006년 1월 21일
인간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제약에서 태어나고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인간의 조건을 취하시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느님은 시간까지 창조하신 분이기에 시간을 초월해 계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시간인 '영원함'은 오늘, 지금, 이 순간과 통합니다. 하느님은 늘 영원한 현재이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고 뵐 수 있는 때도 늘 오늘입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이며,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2코린 6,2). 마르코 복음사가는 오늘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에 가까이 왔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곧 임마누엘입니다. 그분 자신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온전히 충만한 신성이 육신의 형태로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고 있습니다"(콜로 2,9).
예수님의 오심으로 이제 하느님의 나라는 이 세상 안으로 앞당겨졌습니다. "하느님은 영혼이 자신에게 가까운 것보다 더 영혼에 가까이 계십니다"(아우구스티노 성인).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곁을 지나가시며 늘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고기를 잡던 어부들을 바라보셨듯이 말입니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일하시려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르 1,17).
여기서 '사람 낚는 어부'란 무슨 의미일까요? 아마도 물에 빠져 죽을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을 살려내는 일을 상징하지 않을까요? 어부들의 말을 들어보면 바다의 커다란 물고기들은 늘 우두머리 물고기가 앞장서서 길을 인도하고 나머지는 그 뒤를 따라다닌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대장이 다니기 좋아하는 길목에 그물을 치면 다른 모든 물고기까지 잡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예는 한국 교회 역사 안에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신유박해 때 순교한 김건순(요사팟, 1776-1801)은 안동 김씨 종가의 종손으로 온 가문의 대를 이을 아주 훌륭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비밀 결사 단체를 조직하여 부국강병을 바탕으로 청나라를 징벌하여 백성을 구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주문모 신부를 만납니다. 그가 "서양 군함과 대포를 얻어 세상을 구하고자 합니다"라고 아뢰자, 주문모 신부는 "지극한 진실(영혼)을 얻어 세상을 구합니다"라고 답변하였습니다. 김건순과 동료들은 이 만남에서 모두 함께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외아들로 아무런 부족함 없이 충만하게 사실 수 있지만 인류의 구원을 위한 연민 때문에 고통의 바다(苦海)인 이 세상에 '사람 낚는 어부'로 오셨습니다. 인간이 삶의 중심을 자기 자신에서 타인과 함께로 확장하는 것은 예수님의 본성에 부합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협력자로 불리움받고 있다는 표징은 우리 마음 안에 다른 사람들의 구원에 대한 관심과 열망, 이런 감수성이 싹트고 자라나고 있는지를 잘 살펴보는 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