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이신 주님

2006. 12. 30. 오전 10:3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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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랑이신 주님 -2006년 9월 1일

 

  오늘 복음은 우리가 사순 시기에 실천하는 단식과 금육의 의미를 깊게 성찰하도록 초대합니다. 예수님은 단식 논쟁에 대하여 "혼인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느냐?"(마르 2,19) 하고 답변하십니다. 예수님은 단식이 뜻하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율법적인 정의의 관계를 뛰어넘어 인격적이고 살아 있는 '나와 너'의 관계를 이루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자신을 신랑이라고 계시하십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인격적인 관계는 우리가 주님을 신랑으로 믿고 고백하는 데서 역동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성경은 하느님과 인류 사이의 애틋하고 친밀한 인격적인 관계를 약혼과 결혼처럼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호세 2,21). 바오로 사도는 "나는 여러분을 순결한 처녀로 한 남자에게, 곧 그리스도께 바치려고 그분과 약혼시켰습니다"(2코린 11,2). "주님께서 우리의 신랑이시다"라는 고백은 주님은 신랑이 신부를 아끼고 사랑하듯이 우리 각자를 정말로 아끼고 사랑하심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신랑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의 삶은 어떠해야겠습니까? 그리스도는 신랑이고 교회는 그분의 배필(에페 5,21-33)이라는 교회상은 하느님의 백성 누구나가 다 성성(聖性)에로 초대받고 있음을 뜻합니다(교회헌장 5장).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1테살 4,3). 이것이 평신도로서 수행하는 '사제직'의 의미입니다. 즉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체험할 때 그 사랑에 응답하는 적극적인 삶으로 이어지며, 이는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아름답고 거룩한 삶으로 드러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르 2,22)고 말씀하시는데, 십자가의 성 요한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삶을 "불꽃이 튀기어 포도주에 얼큰해서 신적 향유(香油)의 방향(芳香)을 풍긴다(영적찬가 25)"라고 노래합니다.

 

  제가 본당 사목을 할 때 매년 판공성사는 여러 신부님이 와서 도와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에는 정말 많은 교우들이 와서 모두들 오랫동안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우리 본당의 형제 한 분이 성사를 보러 성당에 왔더니 신자들이 이 형제를 손님신부님으로 착각해서 고해소로 안내하며 많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분은 크게 놀라 사제관으로 올라와서 "글쎄 교우들이 저에게 성사를 청해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하며 몹시 겸연쩍어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 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로만 칼라도 안 하고 본당에서 서로 잘 아는 분도 많았는데 어떻게 그분을 사제로 착각했을까?…" 형제님이 평소에 경건하게 수도자처럼 살고, 직장생활이 청렴하고 올곧아 복음의 향기를 풍기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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