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3-20
그때에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20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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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08. 20. 프라도의 집, 참제자모임, 나눔참여 13명>
-수녀님께 일주일 복음묵상을 지도받으면서 비로소 말씀에 눈을 떴는데 , 그 때 말씀이 오늘 복음 '누가 부르시는가'였음이 다시 떠오름. 그 당시에 '나는 너를 잘 알고 있는데... 너는 나를 아느냐'는 성령께서 알려주시는 말씀을 현실처럼 마음으로 들은 이후로, '모른다고 하지 않게 해주십시요' 하고 기도하면서 나 자신의 삶을 살수 있게 됨.
-오늘 말씀은, 성당 여름캠프를 도와주러 갔을 때, 특정 그룹들의 필요에 따라 (서로 잘 모르니) 당신은 필요없다고 하는 상황을 당하고 나서 꼴도 보기 싫었던 체험을 떠올리게 함. 당시 돌아서 버렸을 때, 나가면서 지인을 만나서 결국 모두 함께 하게 된 체험으로 바뀌어감을 접하면서, 믿음이 스스로 즐거워지게 됨.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를 읽어보면, 하늘과 땅이 이미 하나이고, 그것을 보게 해 주는 것이 천국의 열쇠라고 함. 몹쓸 병으로 자존심 상처에 우울증까지 겪었던 고통스러운 옛 체험이 떠오르면서, 그 고통으로 인해서 치유되고 살아난 그 영향이 오늘 나를 살아가게 함을 새삼 느끼게 됨. 고통을 잘 받아내야 하늘을 볼 수 있는 사랑이 뒤따르게 되니, 하느님 안에서 고통을 이겨내서 사랑에 이르게 해야겠다고 기도함.
-맺고 푸는 데 대해서 묵상해 보니, 나 자신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나를 위해서도 용서하고 내가 먼저 빨리 풀어보려고 노력하면서 살아왔다고 생각됨. 이런 모습들이 때로는 바보같이 보이기도 했고, 때로는 내 힘만으로는 커다란 한계에 부딪치게도 했는데, 결국 주님께 의탁해서... 내 안에서 사랑이 나와야 비로소 가능하게 됨을 알게 되는 과정이었음. 이런 저런 고통들은 결국 내 욕심에서 오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면서, 세상살이에서 있을 수밖에 없는 고통들과는 함께 공존하여 살면서, 그 고통들로 인하여 내가 성화될 수 있도록, '너를 보고 나를 알게 되도록' 기도하니... 더 슬기로와지는 것 같고, 더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 스스로 편안해짐을 느낌.
-미사 못가게 심부름시킨다든, 성당일도 장례식은 가게하면서 결혼식은 못가게 하는 그런 집안 분위기들 속에 살다가... 점차 바뀌어나가서 이제는 마음 편하게 미사 지향을 넣을 수 있는 곳까지 만나게 되니... 감사드리고 있음.
-맺고 푸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시지만, 나 자신의 게으름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를 반성함.
-베드로의 자신감있는 그리스도 고백을 보면서 스스로를 반성함. 나 자신도 이런 저런 시선이나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신자-신앙 고백을 그대로 나타내도록 해야 하겠다고 반성함.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는 초대의 말씀에 '살아계시는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려면 인간적 한계라는 걸림돌을 뛰어 넘어야 함. 보이는 세계에 집착해 있어서 초대에 응하지 못하고 제대로 다가가지 못하는 나 자신을 느끼면서, 이를 반석(베드로)처럼 뛰어넘을 수 있음은... 결국 신앙 안에서 받게되는 하느님께서 인도하시는 은총의 영역임을 깨닫게 됨. 이런 말씀을 통해서, 지도자를 통해서 변화되는 공동체 모습들을 다시금 떠올리게 됨.
-오늘 복음 말씀은 주님께서 에클레시아(교회)를 세우시는 부분이 핵심으로, '천상의 교회를 향하여 순례하는 지상의 교회'를 이끄시는 권한을 부여하시는 말씀임. 주님은 당신께서 교회공동체에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은사를 맺고 푸는 권한을 시몬 바르요나라는 한 인간에게 반석으로써 부여하심.
이 은총-은사는 한 개인에게 주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 공동체에게 부여하시는 은총-은사이기도 함.
예컨대 조선 초기교회를 홀로 맡으신 주문모 신부님처럼 '살아서 상서롭고 죽어서 복받는' 은사로 이끌어 가신 교회 시기는 평화롭고 편안한 믿음의 순교자들 모습이 나타나는 반면에, 소 브뤼기에르 주교님처럼 조선은 약속된 땅이니 보지 않고 믿는 자는 행복하다는, 토마스 사도가 주님의 늑방에 손을 넣어보고서 깨달으신 체험대로, 지금 불가능해 보여도 가능하다고 희망하도록 교회를 이끄신 시절에는, 인간적으로 대단히 용감해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초인간적인 믿음의 순교자들 모습이 나타나고 있음.
결국 이는 공동체 전체가, 각각의 개인들이 처하는 이런저런 상황들에 관계없이, 그 은총-은사에 대한 순명을 달성함으로써 한 시대 교회공동체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