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01/ 봄 기운이 조금 느껴지는, 그러나 곳곳에 겨울 심기가 숨어 있는 환한 날
늦은 밤이지만 손톱만한 국화 몇 송이 띄운 따끈한 차 한 잔 앞에 두니 글이 동합니다.
지난 달엔 몇 사람이 돌아가며 화답송을 솔로로 부르기 시작한 터라, 성가대도 그렇지만 신자들도 좀 색다르게 느껴질 거라 생각됩니다.
누군가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건 숨막힐 정도로 떨리는 일이지만, 특히 미사 중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주님께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받으시겠지만, 드리는 입장에선 아득함 속에서 부르게 되는 건 아닌지요.
어쩜 거의 혼미한 상태? 그래서 많은 연습량으로 저절로 되야할 것 같은데...연습과 어찌 그리 다른지...
연습은 실전같이 , 실전은 연습 같이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충분한 연습>이 전제 조건으로 된 다음의 일이겠지만 말이죠.
그런데 실은 '떨리는 목소리'가 섞인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까닭없이 아름답게 들리는 건 왜인지요.
떨림이란 것이 드러나든 내재되어 있든 간에 '겸손, 온전함, 미숙함에서 오는 순수성과 진지함, 극복하려는 노력'이라는 의미로 다가오기에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두 언제쯤 떨지 않고 곡을 잘 살려 부르게 될런지... 온몸으로 글쓰듯 할 일이지만 갈고 닦음이 부족한 탓이라 봅니다.
그러나 얼마나 혼신을 다해 긴장하는지 주님께선 아시리라, 그래서 어여삐 여기시리라 믿습니다.
찻 잔 안에서 두 송이는 꽃잎을 소담스레 보이고, 네 송이는 꽃받침을 보이고 있는데두
여전히 향기롭습니다.
여전히 어여쁩니다.
기울여 마시고 나니 바닥에 남는 건 ' 연습' 이란 생각.
아름다운 부활을 위해 그래야 겠지요.
모두 힘 내시길, 마음을 모으시길.
아직은 바람이 차갑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