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보고 맛들여라.'(8)끝.

2005. 9. 24. 오후 1:21:55

글자

<김연준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 - 고해성사편> 마무리.

우리는 진짜로 하느님을 사랑할 때 계명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랬을때 신앙의 기쁨이 밑에서부터 올라옵니다. 마음속 깊은데서부터 올라오기 때문에 삶이 완전히 바뀌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되면 핑계만 늘게 됩니다. 실제로 가슴아픈 것은 모령성체 하는 영혼들이 고해성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핑계로 일관하기 때문에 모령성체 하는 영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성녀 힐데가르트가 미사중에 환시를 보았는데 미사 드릴때 천사들이 다 둘러싸고 있답니다. 천사들이 둘러쌓여있고 하늘의 빛이 아주 태양빛은 비교도 안될정도로 강렬한 영혼을 꿰뚫는 빛이 이 미사중에 쏟아진답니다. 미사는 믿고만 하면 치유는 미사중에 가장 강력히 일어납니다. 그런데 영성체 순간에 그 사람들의 영성체 상태가 이 수녀님한테 환시로 보이는것이었습니다. 영성체 하는 영혼들이 다섯부류가 나타났답니다. 첫째 부류는 몸이 빛나고 있었고 그 영혼이 아름다움으로 빛나고 있었답니다. 두 번째는 몸이 그림자와 같이 희미했고 그 영혼은 어두웠답니다. 세 번째는 머리가 삼발이었고 그 영혼은 인간 악행의 더러움으로 가득차 있었답니다. 네 번째는 날카로운 가시에 둘러쌓여 있었고 그 영혼은 나병에 걸린 듯했답니다. 다섯 번째는 몸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고 그 영혼은 마치 썩어가는 시체처럼 악취를 풍겼답니다. 

이 성녀에게 이런 환시가 보인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중에 어떤 부류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시대 사람들은 잃어버려서는 안될 것을 잃어버린 것이 있는데 이것을 되찾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고 하는데 그것이 무엇이냐면, 성체께 대한 신심입니다. 성체성사에 대한 마음가짐, 거룩함. 

사실 요즘에 미사를 흥미나 오락으로 지내는곳이 많습니다. 재미가 없으니까 재밌게 하자는 겁니다. 잔치이니까. 그런 맹락의 잔치가 아닙니다. 세속에서 말하는 잔치는 감각적입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인데, 미사에서 말하는 잔치는 그것이 아닙니다. 내적인 영성체는 회개의 결과입니다. 교황님께서 회칙 ‘우리는 성체 성사로 산다.’라는 그 부분에서 요즘 그렇게 변질되어 가고 있다 미사에 대한 거룩함이 사라지고 있다고 개탄하셨습니다. 가장 거룩한것입니다. 신앙의 신비입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은 거룩함만이 인간을 변화시킵니다. 

미사는 온 마음을 다하여 미리 준비하고 나와서 공복제도 철저히 지킬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의 준비도 되야 되기 때문입니다. 미리 그날의 복음과 독서를 읽고 묵상을 하고 영성체 할때 온 마음을 다해서 주님에 대한 신뢰, 실제 살입니다. 상이 아닙니다. 실제 핏덩이입니다.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니라.’할때의 몸은 핏덩이다. 살덩이다. 이런 뜻입니다. 실제 하느님께서 내 살이 되는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하느님은 더 이상 줄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 성체 성사로 인하여. 부유하시지만 이제 더 이상 인간에게 줄것이 없답니다. 다 주셨답니다. 성체성사안에 다 있답니다. 모든 것이 다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고해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성체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것을 회복해야되고 가만히 앉아 있다고해서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 준비를 해야됩니다. 쏟아지는 은총을 받을 준비를 내편서도 해야 됩니다. 오늘 제가 식사를 좀 빨리하겠습니다. 그리고 찬미 율동하실 시간에 계속 성사를 드리겠습니다. 줄서서 계시면 순서대로 고해성사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성체께 집중하면 신앙생활은 편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고 하셨습지다. 예수님은 거짓말을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진리의 말씀이십니다. 끌려다니지 않으십니다. 신앙생활은 정말 기쁨의 생활이고 감격의 생활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병중에서도 기뻐할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려면 순수해야 합니다. 순박함, 순결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가능하냐? 주님, 내가 너무 더러워졌는데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에제키엘서 47장은 성문에서 물이 흘러나옵니다. 성서에서 물하면 성령을 상징합니다. 성령과 예수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은 성체까지 포함이 됩니다. 성체는 성령과 함께 이루어집니다. 성령이 종합이시기 때문에 47장을 보면, 

2.물이 그 대문 오른쪽에서 솟아나는 것이 보였다.

  3.그분이 측량줄을 가지고 동쪽으로 재면서 가다가 천 척 되는 곳에 이르러 나더 

    러 물을 건너라고 하기에 건너보니 물이 발목에 찼다.

  4.그분이 또 재면서 가다가 천 척 되는 곳에 이르러 나더러 물을 건너라고 하기

  에 건너보니 물이 무릎에 찼다. 그분이 또 재면서 가다가 천 척 되는 곳에 이르

  러 나더러 건너라고 하기에 건너보니 물이 허리에 찼다.

  5.그분이 또 재면서 가다가 천 척 되는 곳에 이르러보니, 건널 수 없는 강이 되

    어 있었다. 물이 불어서 헤엄이나 치면 건널까, 걸어서는 건너지 못할 강이 되

    어 있었다.

  6.너 사람아 보지 않았느냐? 하고 말하며 그분은 나를 강가로 도로 데리고 갔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8.이물은 동쪽으로가다가 메마른 벌판으로 흘러내려 사해로 들어간다. 이 물이

    짠 사해로 들어가면 사해의 물마저 단물이 된다. 

사해의 물은 생명체가 없습니다. 짜디 짭니다. 죽음의 바다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의 바다마저 단물이 된다는것입니다. 

그 다음에

  9.이 강이 흘러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온갖 생물들이 번창하며 살 수 있다. 어디

    로 흘러 들어가든지 모든 물은 단물이 되기 때문에 고기가 득실거리게 된다. 

이것은 내 삶이 아무리 죄 투성이고 상처투성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성령임을 성체가 내 안에 들어오시면 온갖 생명이 내안에서 다 이루어진다는것입니다. 온갖 생명의 은총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고 열매들이 나온다는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믿어야됩니다. 문제는 믿지 않는다는것입니다. 

뒤에 이렇게 나옵니다.

 11.그러나 수렁이나 웅덩이에 있는 물은 단물이 되지 않고 여전히 짠물로 남아 있

    으리라. 

웅덩이 물 수렁의 물 여전히 짠물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웅덩이와 짠물은 끝까지 거절하는것입니다. 나의 합리화 핑계로 일관하고 내방식대로 달짝지근한 것에 신앙생활을 안락하고 편하게 하나의 취미생활로 끝까지 삼고 내 죄를 끝까지 감추어버리는것입니다. 웅덩이란 그냥 가두어버리는것입니다. 내안에 머무르는것입니다. 끝까지 나를 감추어버리고 닫아버리는 것, 부끄럽다는 이름으로 '하느님은 사랑인데 어떻게 지옥이 있을수가 있어?' 하며 내식대로. ‘봐, 다른 사람들도 다 저렇게 강의를 하잖아. 저에겐 없는것처럼 말을하잖아.’ 내입에 맞는것만 가져와서 끝까지 순수하게 성서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끝까지 내식대로 해석하면 그것만큼은 짠물로 남아있을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해방되는 날입니다. 새로운 은총이 내 안에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날입니다. 그것을 누리도록 하십시다. 아멘!   - 120분강의 내용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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