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보고 맛들여라'(6)

2005. 9. 23. 오후 11:31:38

글자

<김연주프란치스코신부님강론-고해성사편>

 

네 번째 계명은 ‘부모에게 효도하라.’ 

성서적 관점에서 보면 부모님께 효도해야만 현세적인 축복도 받는다고 했습니다. 부모에게 불효하면 현세적인 축복도 없고 나한테로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제 4명의 핵심은 부모의 위치를 인정해주라는 겁니다. 돈을 많이 드리라는 것이 아니고 부모님의 위치를 인정해 드리라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율법적이냐 하면 성당에 나온다고 밥도 않차려주고 알아서 챙겨드세요. 하고 성당에서 오히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는 이유로 부모를 소홀히 하는 것 율법주의입니다. 먼저 부모님을 챙겨 드리고 성당에 나와야 축복을 받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식들한테 알아서 챙겨먹어!라고 자식들한테도 내가 부모로서 해야할 도리를 너무 소홀히 하는 것도 역시 율법주의입니다. 왜냐면 성당에 나오면 내가 좋습니다. 홀가분하고 기쁨이 느껴집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은 유화적인것입니다. 원래 하느님을 사랑할수록 깊어질수록 고통이 깊어지는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가시입니다. 이렇게 싸워야 되기 때문에 눈물나는 일인것입니다. 나한테 주어진 의무부터 기본적인 것부터 해야 되는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것이 율법주의에 빠지는 길이 됩니다.


다섯 번째 계명은 ‘살인하지 마라.’

창세기에 보면 카인이 아벨을 죽였을때 아벨이 복수를 부르짓습니다. 이 살인죄는 복수를 요구하는 죄입니다. 피를 흘린 사람은 나도 앙갚음하리라. 창세기에 나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피는 하느님의 생명이기 때문에 생명은 하느님의 것이고,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 하느님의 모상을 헤치는 피를 흘리면 하느님께 대한 정면적인 도전이기 때문에 하느님께 앙갚음 하는 것이 됩니다. 이 살인죄는 보복을 요구하는 죄입니다. 그런데 ‘낙태’우리한테 있습니다. 1년에 우리나라에서 낙태가 몇건이나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하루에 낙태아이들이 몇 명 생기는줄 아십니까? 이 보복을 무서워하는 무서운 죄가 몇건인지 아십니까? 백건이요? 천건이요? 아닙니다. 추정으로 하루에 5천건이 넘습니다. 5000명이 낙태당합니다. 살해 당하는것입니다. 그것도 부모로부터 말입니다. 생각을 해보십시오. 우리들 어렸을 적 부모로부터 상처를 받으면 평생이 갑니다. 그 낙태 아이들의 상처는 영원히 갑니다. 부모가 나를 낳아주고 밥먹여주고 키워주고 했는데도 상처가 오래가는데 그것까지도 차단되는 아이는 얼마나 상처가 오래가겠습니까? 그러니 세상은 척박해지는 것입니다. ‘신부님! 저 그러면 어떡합니까?’최선의 방법은 낙태는 보복을 요구하는 죄입니다. 내가 지금 여기서 할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은 인간의 노력을 넘어서기 때문에 ‘예수님의피’입니다. 미사 봉헌이 최고의 도움입니다. 물론 고해성사가 우선적으로 전제되어야 하고, 그것도 통회해야합니다. 무서워서 고해성사를 볼것이 아니고 통회를 해야합니다. 제가 사목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것인데 낙태를 많이 한 가정일수록 집안에 불란이 많습니다. 사건과 사고가 많습니다. 정신 질환도 생기게 되고, 그런 가정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그럴 가능성이 많습니다. 담배를 피는 사람이 암발생율이 많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그 가정안에 불란이 많습니다. 낙태를 많이 한 가정일수록 집안 형제들간의 사이가 다툼이 많고 별로 좋지가 않습니다. 최선의 방법은 일단 미사봉헌을 해주는 것인데 그냥 해주는 것보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름이라는 것은 부모와 자식간의 연관입니다. 부모와 자삭간에는 이름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이름 없는 사람이 제일 불쌍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제일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이름도 그냥 이름보다는 그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세례명으로 지어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세례명을 더 좋아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세례를 준 것은 아닙니다. 이미 죽어버린 영혼에게 어떻게 세례를 줍니까? 세례명을 지어준다하여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아이의 영혼이 세례명을 더 좋아할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사람 이름을 더 좋아할 것 같습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상관하지 말고 세례명으로 그 영혼을 위해서 미사를 봉헌해주고 또한 내가 당하는 고통과 스스로 하는 선행들을 그 아이의 이름으로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상처받은 그 아이를 감동시켜주어야 합니다. 낙태를 해서 당하는 고통이 훨씬 큽니다. 낙태를 하지 않고 키우는 고통보다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낙태를 해서 당하는 고통이 큽니다. 그런 작업이 필요합니다. 

 

여섯 번재 계명은 ‘간음하지 말라.’입니다.

우리는 간음을 다른 사람하고 자는 것만을 생각합니다. 천만의 말씀. 간음은 눈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음란한 그림을 보면서 간음죄는 성립됩니다. 음란한 소리를 들음으로써. 음란한 장소를 감으로써 간음죄를 짓기 시작합니다. 사람은 처음부터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것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에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것도 간음죄입니다. 눈으로도 죄를 짓고, 발로도 짓고, 귀로도 짓습니다. 왜? 이것은 고백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말초신경은 면역체계가 아닙니다. 개발이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TV를 보지 않습니다. 신학생때도 않보았고 지금도 않봅니다. 간혹 보게 되면 그 영상이 기도시간에 떠오릅니다. 않그렇습니까? 보면 볼수록 개발이 됩니다. 면역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부님은 교구 신부님이시니까 우리들의 삶도 알아야 되니까 그런것도 좀 접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접하면 접할수록 개발이 되기 때문에 합리화하게 되고 기도도 등한시 하게 되고 세속화 됩니다. 하지만 절제하면 절제할수록 콘트롤을 할수 있는 능력이 됩니다. 볼 필요를 못느끼고 유혹도 덜 생깁니다. 반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유혹에는 대부분 넘어갈수가 있습니다. 성서를 보면 다윗도 넘어갔습니다. 솔로몬은 말할 것도 없고, 삼손도 넘어갔습니다. 조심성이 최고입니다. 이 6계명에 대해서는 조심성을 잃어버리면 넘어집니다. 조심성!

죄의 기회를 피해야 됩니다. TV를 밤늦게 보는 사람치고 기도를 잘할수 있는 사람은 한명도 없습니다. 핑계만 늘게 됩니다. 엉뚱한 기도만 하게 됩니다. 

제가 군대있을때의 이야기입니다. 군대를 가는데 후회가 됩니다. 내가 천주교 신자가 왜 빨리 됬을까? 즐길 것 다 즐기고 천주교 신자가 됬으면 좋았을텐데 유혹도 있는데 내가 즐기고 싶은데 못즐깁니다. 나중에 제대하고 세례를 받을걸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손에서 묵주반지도 뺐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줄 아십니까? 첫 번째 휴가를 나왔는데 성체앞에 앉아있을수가 없습니다. 예전에는 성체앞에 앉아 있는 것이 굉장히 보람이고 기쁨이었는데 군대생활을 하면 주위의 이상한 말도 듣게 되고 하니 분심꺼리도 되고 유혹도 오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기도가 되질 않았습니다. 성체앞에 5분도 앉아있을수가 없었습니다. 그 전에 30분 앉아있어도 그렇게 감미로웠는데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그래서 내가 고해성사를 봐야되는구나하고 휴가를 나와서 첫 번째로 신부님을 찾아가 고해성사를 받고 나서는 다시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군대에서 묵주기도도 하고 재밌게 살았는데, 이처럼 성적인 죄는 개발이 됩니다. 절대 면역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조심성을 키워야 됩니다. 또한 결정적으로 우리가 놓치고 있느것이 ‘피임’입니다. 천주교 신자들 80%가 인공피임을 합니다. 중절 수술을 합니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죄인줄도 모릅니다. 그게 무슨 죄입니까?라고 합니다. 그 애를 키우자면 경제적인 손실은 너무나 크고, 살아갈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인간적인 것으로만 해석을 합니다. 주님을 믿지 않습니다. 불임은 구약성서에 보면 죄의 상징이었습니다. 

생명은 하느님의것인데 내가 조절을 하는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면 바로 저한테 대듭니다. 젊은사람이 뭐를 안다고 이렇게 말합니다. 불임 수술을 해버렸습니다. 연옥가서 이제 편한 만큼 고생 해야 합니다. 내가 편하게 하려고 했던 행동일수록 가서 몇배로 갚아야 합니다. 40대까지는 병원가셔서 다시 원상복귀 하시고, 늦으신 분들은 살아있을적에 보속 행위를 많이 해야 합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교황요한바오로2세 존경하시지요? 그분의 가르침입니다. 제 말을 듣고 불임 수술을 다시 회복하신 분이 계십니다. 인공 피임 않하시는 분이 계신데 얼마나 행복하게 잘 사는지 모릅니다. 그분들은 얼굴에 비싼 화장품을 바르지 않아도 얼굴이 빛납니다. 저는 분명히 봅니다. 신앙은 그래서 처음에는 눈물로 시작해서 기쁨으로 끝나는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시작은 언제나 눈물로 시작됩니다.

 

계속..

댓글 1

  • 2005년 9월 23일 오후 11:49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 저희 모두가 진실로 회개할수 있는 은총을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