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준신부님 강론 이어짐.) - 고해성사에 대하여..
③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우리는 자라면서 나름대로 상처를 받습니다. 그 상처가 부모한테서 올수도 있습니다. 상처라는 것은 가장 가까운 사람한테 오는 것은 가장 깊고 오래갑니다. 이것이 억눌린겁니다. 그런데 ‘억눌린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며’ 저는 이 고해성사를 보고 나서 한꺼번에 다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꺼번에 ‘주님, 당신이시군요.’ 그래서 오늘 피정의 주제가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보고 맛들여라.’이것 입니다. 오늘 미사가 끝나고 나면 그렇게 될것입니다. (신자석에서 “아멘!”)
이 체험을 하고 나서 이제 기쁜 생활을 하다가 결국은 사제성소를 느끼고 신학교 가서 생활하고 사제 서품도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또 한번의 강력한 체험을 주십니다. 이 체험은 저를 위한 것도 있지만 사실은 여러분들을 위해서 주신 체험입니다.
신자분들이 저에게 “신부님 사제생활 하면서 가장 감격적인 순간이 언제이십니까?”하고 물어본다면 언제일 것 같습니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제서품 받는순간이겠지요? 아니면 내 출신본당에서 드리는 첫 미사 이겠지요? 이렇게 예상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한테는 그 첫 미사보다도 감격스러운 순간이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순간이길래 첫미사보다 더 감격스러운것일수 있는가?하실 겁니다. 사제가 되고 나서 첫본당에 부임하여 갔습니다. 큰 본당이었습니다. 본당신부님께서 편찮으셔서 가자 마자 굉장히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저 또한 열정에 불타있었습니다. 불이었습니다. 기쁨에 충만해 있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 불타있었습니다. 물론 제 감정이 그런것이었습니다. 아주 열심히 일했습니다. 신자들이 요구하는 것 다 들어드렸습니다. 그렇게 생활하다보니 6개월이 되어서 완전히 파김치가 되었습니다. ‘아이구 힘들다. 좀 쉬고 싶다.’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드디어 제가 결심을 하고 주일 새벽미사를 드리고 주일 저녁미사를 본당 신부님께 부탁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새벽미사와 학생미사를 하고 동창 신부에게 가서 다음날 월요일이 쉬는 날이고 하니 쉬고 싶은 마음에 주일인
데도 동창 신부가 있는 지방엘 내려갔습니다. 중소도시에 있는 그래도 큰 본당이었습니다. 가서 동창 신부와 점심도 먹고 좀 쉬었습니다. 동창 신부가 저녁에 청년미사를 하려고 나갔습니다. 나는 쉰다고 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한시간도 않되어서 쉬고 있는데 미사중이었던 복사아이가 올라오더니 신부님께서 내려와서 고해성사를 달라고 청하였답니다. ‘오메 이것이....웬수가 따로 없네. ’저는 모처럼 좀 쉬고 싶어서 왔는데 그것을 못참고 이렇게 나를 괴롭히나 싶었습니다. 그래도 내려갔습니다. 공지사항 시간이었습니다. 또 이렇게 신자분들에게 얘기하는겁니다. “광주에서 동창 신부가 내려왔습니다. 아주 고해성사를 잘 주는 신부님이십니다. 다 보고 가십시오.”하는 겁니다. 저는 순간 멍해졌습니다. 그런데 이 신부가 작정을 한것이었습니다. 그날의 강론이 ‘고해성사’에 맞췄습니다.
이런 강론을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이 강론 내용을 들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 은혜의 피정이 됩니다.
성녀 데레사가 기도 중에 환시를 봅니다. 기도중에 환시를 보는데 갑자기 불구덩이가 눈앞에 펼쳐지고 많은 영혼들이 불구덩이에 떨어지는 겁니다.
‘아니 주님 제가 지금 도대체 무엇을 보고 겁니까? 아니 이 영혼들은 왜 이렇게 지금 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까? 천주교 신자들이 아니겠지요?’하고 여쭈니 슬픈 음성으로 주님께서 ‘아니다 데레사야. 너처럼 천주교 신자들이다.’이렇게 말씀하신겁니다.
‘그렇다면 주님, 이 영혼들은 냉담자 들이겠지요?’라고 하니, ‘아니다 데레사야, 너처럼 정기적으로 고해성사도 보고 영성체도 자주 하는 그런 영혼들이다.’이렇게 말씀하시는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 이 영혼들이 왜? 지옥에 떨어집니까?’하고 애원하니, ‘데레사야, 저 영혼들은 모고해 모령성체 하는 영혼들이다.’이러시는 겁니다.
‘너는 사제에게 가서 모고백과 모령성체가 얼마나 무서운 죄라는 것을 말해주어라.’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어느 수도회 신부님께서 임종을 앞둔 자매님한테 노자 성체를 영해 주기 위해 갔습니다. 고해성사를 다 듣고 나서 사죄경을 하려고 손을 들었습니다. 저희 사제들은 마지막 사죄경인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 교우의 죄를 사하나이다.’ 이 말이 발설되어야만 그 죄가 사해지는 겁니다. 그말이 않되면 그 고해성사는 무효입니다. 이 신부님께서 오른손을 들고 사죄경을 하려고 하는데 마비가 되면서 뭔가가 손을 딱 잡았답니다. 그래서 놀란 신부님께서 그 자매님께 고해성사를 다하셨냐고 물으시니까 자매님께서는 다 하셨다고 하길래. 알았다고 하시며, 다시 기도를 하려고 하니 아까와 똑같은 현상이 나더랍니다. 다시 정말로 고해성사를 다하셨는지를 물으니 “신부님! 제가 죽는 마당에 거짓말 하겠습니까?”라고 말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사죄경을 하려는 순간 아까와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서 신부님은 알아채시고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시면서 “왜? 자매님의 영혼을 지금 악마에게 넘겨주는것입니까? 왜, 거짓말을 하는것입니까?”하고 애원을 하니까 그 자매님은 소스라치게 놀라 울며 통곡하면서 “신부님 사실은 제가 15년전 지은 죄를 아직까지도 고백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부끄러워서 고백을 못했습니다. 제가 주님을 온전히 믿지 않았습니다.”하고 울며 고백을 하신겁니다. 다 용서를 받고 성체도 모시고 임종을 맞으셨답니다. 이렇게 동창신부가 강론을 한것이었습니다. 그러고 공지사항 시간에 신자들에게 성사를 다 보시라고 한것입니다. 저는 그 말이 무슨말인지 모르고 고해소에 들어갔습니다. 동창신부와 같이 주었었는데 저한테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해실 안에 얼굴을 숙이고 보니 그 사람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선풍기도 틀수가 없었습니다. 선풍기를 틀면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고해실 말이 잘 않들렸고 에어콘도 없었습니다. 더운 한여름이었는데, 푹푹 쪘지만 두시간 넘게 고해성사를 준 것 같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같이 성사본지 7년, 10년, 15년, 20년 이랬습니다. 1년은 아예 명함도 못내밉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제까지 다 모고백 모령성체를 했다는 겁니다. 하나같이 다 울면서 고백을 합니다. 제가 그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아십니까? 그 감정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런 죄를 지을수 있을까?’일까요? 아닙니다. 아무리 무서운 죄를 제가 들었다 하더라도 그런 생각이 정말로 들지 않습니다. 제가 착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마음속 깊은데서 올라옵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그런 연민의 마음이 예수님의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그 말씀처럼. 제가 그 고백을 들으면서 “아니 왜? 15년동안이나 질질 끌고 그렇게 힘들게 가지고 살았느냐고? 왜 그렇게 15년간 자신을 힘들게 하셨나고 빨리 고백을 하시지..”나무라는 것이 아리나 안타까운 마음에 물으니, 그러면 그분은 더욱 엉엉 울면서 “그러게요. 신부님! 제가 주님을 믿지 못했습니다.”하고 엉엉 더 웁니다. 보속꺼리를 주고 제가 사죄경을 해드립니다.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 교우의 죄를 사하나이다.’ 그 순간 그 교우는 15년동안 악마의 사슬을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무엇으로도 끊을수 없었던 마귀의 사슬 어떠한 힘으로도 끊을수 없었던 마귀의 사슬이 저의 이 한마디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교우의 죄를 사하나이다.’이 순간 풀리는 것입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지금 가는 것입니다. 제가 이 성사를 주면서 얼마나 사제직이 위대한지를 깊이 체험했습니다. 사제가 이런것이구나! ‘주님! 제가 사제라니요?’당신의 이름으로 마귀의 사슬을 끊어버리는 이것은 기가 막힌 감동입니다. 사제직의 고귀함과 위대함, 사제가 이런것이구나. 제가 사제가 되었다는 것에 대해 너무 너무 자랑스럽고 그 무엇으로도 바꿀수가 없는겁니다. 이것은, 한 영혼을, 한 영혼이 아니지요.. (약간생략)
그때 제가 고해성사를 다주고 나서 고해소를 나오니까 동창신부가 미안하다고 이렇게 많이 볼줄은 몰랐노라고 하며 어쩔줄을 모르는것이었습니다. 미안하다고 제차 말을 하는 그 신부에게 저는 화를 내는것처럼 “어쩜 그럴수가 있느냐고? 동창 밖에 없다고 나한테는. 감사하다고.” 진심으로 제가 감사를 했습니다. 나의 사제직에 잊을수 없는 체험을 주었다. 나는 하느님을 강력하게 체험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이어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