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소멸
2012. 8. 24. 오후 6:12:03
글자
푸르른 소멸
강 훈 정
나 홀로 지나쳤던 많은 곳
뾰루지 같은 감정들이 귀를 열고 올을 세워
가늘게 눈뜨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 하면서
순간의 느낌이었지만 어떻든지 간에
내겐 영원히 머무를 것 같은 시간이었다
처음 보는 농부가 자기가 부르는 노래의 곡을 아느냐고 물었다
난 모른다고 했다
우리 둘 웃었고 또 웃었다
내 옆에 앉아있었던 한 방랑자는 자기 맨발을 들여다보느라고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못보고 놓쳐 버렸다
짧은 여행길이라 하더라도
평온하고 무사하게 할 수 있었으면 하던 중에
길에서 이야기 하나를 주웠다
조용한 방랑자
낯설지 않은 농부의 노랫소리
우리는 이 길을 걸어가는 우연한 길동무였던 것이다
저녁이면
새끼양처럼 잠이 드는 것이 좋았고
열려진 창문으로 우루루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이 너무 좋았고 , 그래서
훌훌 벗어던지고 마당으로 나가
손끝에 닿을 것만 같은 별들에게 손바닥을 펼쳐보였다
그러다가 알게 되었다
이것이 몇 일간의 불면증의 원인이었다는 것을
도시를 잠시 벗어난 사람들
대개는 불평을 털어놓고 있었다
월급에 대해
위선에 대해
헛되이 지나간 시간에 대해
모든 경계를 버린 상태가 이런 것일까
분노와 회한으로 뒤엉킨 연민의 표정이 이런 것일까
그러다가 알게 되었다
이런 고백조차도 우리에겐 결코 풀리지 않을 숙제임을
길을 떠나보는 것은
몸 속에 숨겨 놓은 비밀의 문장을 찾아 나서는
끝없는 순례라는 것을,
2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