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원성당 성지 순례 스켓치

2010. 10. 5. 오전 5:5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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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풍수원 성당 성지 순례 스켓치

 

      김형풍 암브로시오

 

2010년 10월 3일,

강원도 횡성 풍수원 성지를 향해

8 대의 버스로 나누어 타고

08시에 출발,

10시 30분경 현지에 도착 되었습니다.

 

나는 2구역 배정 버스 3호차를 타게 되었는데

같은 버스 내 옆자리에

휠체어를 탄 90세 되신 이 로사리아 할머니께서

58세 되시는 따님 김 세실리아 자매님의 부측을 받고

함께 가게 되었는데 처음엔 걱정이 되어

안내를 맡아 수고 하는 형제님에게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얘기를 해 보았더니

이미 가시는 것으로 결정을 보았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러나,

나의 걱정은 하나의 기우에 불과 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차 멀미도 없이

주위 사람들에게

조금도 신경 쓰지 않게

계신지 안 계신지 조차 알 수 없게

조용히 아주 거뜬히 잘 버텨 주셨습니다. 

참 대단 하신 자매님께 감사 드리는 바입니다.

 

그 연세에 언제 또 올 수 있겠느냐는 마음에서

이 좋은 기회를 놓지지 않고

어려움을 각오 하면서 친정 어머니를 모신

효심이 지극한 따님 김 세실리아 자매님과

걱정이 되어 몇마디 말을 나누어 보았으나

아무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였습니다.

........................./

 

주위 경치가  너무 좋고

공기 맑고

역사의 흐름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벽돌로 지은 아름다운 성당이

그 때 당시 기념 식수로 심어 놓았을법한

웅장한 고목 나무와 함께 우리 일행을 맞아 주었습니다.

 

성당 마루바닥에 앉을 자리가 모자를 정도로

신발은 각자 비닐봉지에 넣어 간수 하고

신도들이 초만원으로 꽈악 들어찼습니다.

의정부 송산성당 360여명의 신자들과

기아자동차 가톨릭 모임 단체 신자들로

가득 뫼워졌습니다.

 

풍수원 본당 김승오 아오스팅 주임신부님의 집전으로

11시 미사가 시작 되었는데,

 

오늘 강론 말씀의 핵심은,

"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자기를 버리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는 말씀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를 버리지 않고는 하늘나라로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부님께서는 외치셨습니다.

우리는 신자가 아닌 생활인으로

어디 놀러 간다, 어디 친목회다, 어디 결혼식이다,

하면서 그쪽으로 가면서 주일 미사를 빼먹는다는 것이였습니다.

이 말씀중에 여기 저기서 "피드득 "웃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니까,

그렇습니다 ,하고 공감을 표한 것이 되겠지요,

참 기가 막힌 일이고,

옛 순교자들이 하늘에서 내려다 보시고 가슴을 칠 일이지요.

 

신부님의 주 말씀은

옛 순교자님들의 정신에 대한 말씀이셨습니다.

 

신유사옥(辛酉邪獄),

1801년 (순조)  천주교도들을 박해한 사건으로

천주교 선구자인,

이가환, 이승훈, 정약종, 최필공,....등이 같은 현장에서 참수 당하고

정약전, 정약용 형제는 귀양을 당하고

북경교구 주문모(周文模)신부가 자수를 하여 참형 당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에 대한 말씀도 계셨습니다.

이 기회에 기록을 찾아

김대건 신부님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1821년 8 월 21일,

충청도 내포의 솔뫼 마을

충남 당진군 우강면 신종리에서

아명은 재복이였고,

천주교 신자인 아버지 김제준의 아들로 태어 나셨습니다.

아버지는 1839년(헌종5) 기해사옥 때 순교 하셨고

아드님이신 대건은 고향을 떠나

경기도 용인 골배마실로 옮겨 피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옛날엔 용인 사람이라고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 김대건 신부는

한국에 최초로 들어 온 외국신부 모방(p,Maubant)의 주선으로

최양업, 최방제등과 함께

중국으로 귀국 하던 신부 유문제(劉文濟)를 따라

마카오 외방전교회의 신학교에 가서 수학하고

1843년(헌종9)12월31일 보교(補敎)로 취임했고

1845년 8 월 17일 신부의 직을 받고

페레올, 다볼휘 두 외국인 신부와 입국 하게 되었으며

1846년 5 월,

선교사의 입국과 주청 선교부와의 통신연락에 필요한

비밀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황해도 연안을 답사 하려다가

등산진(登山鎭)에서 체포되어

1846년 9월 16일에

노량진 모래사장 새남터에서 사형을 당하고 순교 햐셨습니다.

1925년 7월 5일,

로마 교황 비오 7세로 부터 복자위(福者位)에 올림을 받았습니다.

 

 

신유, 병인박해를 통해 100년 동안

약 1만 여명의 천주교신도가 사망 했다는 말씀을

신부님께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을 무참하게  죽이는 그 와중에

도망쳐

이곳 겹겹 산중 안전지대를 찾아

천주교 신자들이

90 여년 동안 숨어서  천주님 섬기며 피난생활을 한 곳이

바로 이곳 풍수원 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때 당시 신태호 베드로님과

정현성당을 짓는데 일조를 하신(지금의 명동 성당) 정규하 아오스팅 신부님이 주축이되어

이 풍수원 본당을 짓게 되었는데

이 겹겹 산중 까지 여성 신도들이 머리 정수리에 이어 벽돌을 날라

머리 정수리가 퉁 퉁 부었고 까지고 했다는 얘기에

눈물이 피잉 돌았습니다.

멀리 양양, 양구 ,강릉, 춘천 둥지에서

보름이상 걸려 걸어서 이곳 풍수원 까지 와서 

풍수원 본당을 짓는데 많은 신도들이 몸을 아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성당 건축 양식은

명동성당 축소판으로

좌우 기둥을 6개씩

양쪽 모두 12개로 바치고 있는데

예수님을 받드는 12 제자들을 의미 한다는 것이였습니다.

명동 성당을 짓는데 일조를 한 중국인 진 베드로와

정규하 아오스팅이 진두지휘를 했다는 것으로

실내를 울리는 음성이 크게 들리도록 되어 있어

마이크가 없이도 잘 들리도록 설계가 아주 잘 되어 있다면서

신부님께서 마이크 없이 제대 아래로 내려와 말씀을 하시면서

"제 얘기 잘 들리지요? "하고 ,

우리들에게 말씀을 하시는 것이였습니다.

 

아주 내부 구조가 잘 되어 있는

좋은 성당 이라는 것을 계속 강조 하셨고,

우리나라에서는 네 번째로 생긴

아주 오래된 성당이

바로 이곳 풍수원 성당이라고 했습니다.

 

성체를 받아 모시는 풍습도

옛 그 대로

신도들이 제대 앞에 나가 무릎을 꿇고

신부님께서 혓바닥에 직접 올려 주셨습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

 

미사를 끝내고

각자가 준비해온 점심을 구역 반별로

맑은 자연 속에서 자리를 깔고 모여 앉아

꺼내 놓고 먹으니

다양한 음식이 군데 군데 뫃여

근사한 하나의 부훼 파티가 되어

보기에도 참 좋았습니다.

 

점심 식사 후에

십자가의 길을 향해

많은 신자들이 그리로 향했는데

십자가의 길을 다 끝내고

내려 오려는 도중에

난데없는 지나 가는 쏘나기 비가

한 10 여분 동안

억수 같이 쏟아지는 바람에

피할 곳이 없는 곳이라서

그냥 그대로 흠뻑 맞는 수 밖엔 도리가 없었습니다.

 

우리의 성지순례를 돕기위해

비도 그쳤다고 좋아 하셨던 신부님께서도

흠뻑 비를 맞으셨고,

버스장 까지 거의 다 내려 오는데

언제 비가 왔느냐는 식으로

햇빛이 밝게 쏟아지는 것이였습니다.

 

의정부로 오는 길은

풍수원으로 갈 때 보다

막히는 것 없이

더 빨리 오는 바람에

오후 5시도 안되어

일찍 도착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사고 없이

아주 편안하게 잘 다녀온

성지순례였습니다.

신부님의 강복을 끝으로

모두들 집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안전하고 편리하게

잘 다녀 올 수 있도록

봉사를 해 주신

형제자매님들께

감사의 박수를 보내 드리고

안전운행을 해 주신

모든 운전기사분들께도

감사 인사 드립니다.

 

밤 늦게 까지

시작에서 돌아올 때 까지의 많은 것을

담아온 사진 정리 작업을 하다가

100 여장의 사진을 60 여장으로 줄이고 또 줄이는 과정에서

앗차!1,

순간 실수로 모든 사진이 날라가 버렸습니다.

너무 아까워 마음이 아파

밤새 잠을 못 이루고

부족한 대로 이 글을

가까스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김형풍 암브로시오

 

 

 

 

댓글 4

  • 2010년 10월 5일 오전 11:23

    너무 아까워하지 마세요. 다시한번 머리로 마음으로 생각해볼수 있어 좋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2010년 10월 5일 오후 9:22

    형제님! 님의 마음을 주심에 감사 합니다.역사가 흐르는 아름다운 성당을 못 올려 마음이 아픕니다.

  • 2010년 10월 6일 오후 12:28

    아이고 아까워라 언제나 성당 그림이 올라오나 기다렸는데, 아쉽지만 항상 예쁜그림 올려주심에 감사합니다.^^

  • 2010년 10월 7일 오후 5:32

    님의 마음을 담아 고운 흔적을 남겨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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