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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산 노인복지관에서 만난 아주 묘한 인연
걸 풍 / 암브로시오
2010년 8월 18일(수) 25일 동안의 여름방학을 마치고 개학 하는 날,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게 되었음을 자축 하는 의미에서 복지관에서 가까운 현대마트 바로 옆에 생긴지 얼마 안되는 빈대떡집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별로 크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작지도 않은 아담한 집이 안주 메뉴도 제법 다양하게 갖춘 집이라서 우리들의 단골집이 되었습니다.
마음씨 착한 홍반장님과 신여사 그리고 당년 82세이신 송희성 선생,..등 8 명이 반가운 마음으로 막걸리 잔을 나누었습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얘기끝에 송희성 선생께서 한양고등학교 교장님으로 은퇴를 하셨다고 해서,
그러시다면 혹시 조일묵(趙一默)이를 아시느냐고 했더니,
어어!!, 그 친구를 어떻게 아느냐고 깜짝 놀래시는 송 성생님 왈(曰),
일묵이는 당신 제자로 담임 선생을 했고 나의 친구 조일묵이가 반장을 했었다는 것이였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나는 놀래서 입을 벌리고 한참동안 벌어진 입을 다물지를 못했습니다.
도무지 믿겨지지 않아서 그게 사실이냐고 다시 묻는 나에게, 일묵이 그 친구 온양온천 촌놈이 서울로 올라와서 출세를 했는데 더 크게 될 사람이 끝이 좋지 않게 되었지..../ 말 끝을 흐리는 송 선생님께 세상에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 친구, 일묵이가 고향 온양온천 국민학교 동기동창 불알잡이 친구라고 했더니 송 선생도 놀라고 나도 놀라고 좌중에 있는 모두가 놀랬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좁다고 하지만 아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내가 참 좋아 하는 친구 이면서도 참으로 존경 하는 친구 조일묵씨에 대해서, 2009년 12월22일 " 세상에 이럴수가 있습니까? "로 " 어린왕자의 들꽃사랑마을"에 올린바가 있는데, 그 때의 반응이 대단 했습니다. 조회가 1346건이나 됐고 모두가 동정적으로 공감대를 형성 했었습니다.
내가 참 좋아 하는 친구 조일묵(趙一默)씨는 일찍이 한양대학교 총 학생회장을 맡아 볼 정도로 똑똑 하고 훌륭한 친구라서 인기가 절정에 올라 있었고 한양 중고등학교, 한양대학교 출신들은 조일묵이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 까지 생겨날 정도 였었습니다.
그런 나의 친구 조일묵이 담임 선생을 하셨다는 송 선생님과 중국어 공부를 같이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당체 뭐라 말로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나의친구 조일묵씨는 우리나라 " 기능올림픽 조직위원회" 창설 멤버로 훌륭한 기능공들을 인솔 단장으로 세계가 좁다고 누비고 다니면서 각 분야별로 금메달을 힙쓸어 왔고,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등등,..../ 세계강국들을 모두 다 제치고 10여회가 넘도록 우승을 했고 우리나라를 기능 최 강국으로 만드는데 일등 공로자로 관계인들은 모두 다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나라 중소기업진흥공단을 주역으로 창설 하였고 초대 기술 이사직을 맡아 우리나라 중소기업 진흥육성에 크게 이바지 한 훌륭한 나라 일꾼 노릇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검정공단을 만들어 초대 검정국장을 지내면서 이나라 기능인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기여를 했고,
88 올림픽 때는 " 장애자 올림픽 조직위원회 " 사무총장직을 맡아 세계 올림픽사상 가장 훌륭히 치른 경기라고 세계 언론에 최고의 찬사를 받을 정도로 아주 훌륭히 " 장애자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이끌은 장본인이 바로 조일묵씨 입니다.
그 후 그는 10 여년이 넘도록 우리나라 장애인 재활협회 회장으로서 그 소임을 다 했습니다.
그런 훌륭한 친구의 고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을 맡으셨다는 송 선생을 모시고 중국어 공부도 하고 이렇게 말동무 되어 함께 막걸리도 나누게 되었으니 참 기가 막혀 말이 잘 안 나올 지경입니다.
우연치고는 참으로 신기한 인연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송 선생께서 20대 시절 담임을 하셨고 내 친구 일묵이는 학급 반장을 맡을 정도로 공부도 잘 했고 운동도 잘 하고 학우들로 부터 인기 짱이였고,
송 선생께서 20대 교사 시절 방 얻어 생활 하실 때 집에도 자주 놀러 왔었다면서 아니, 어떻게 이렇게 인연이 될 수가 있느냐고 화제가 온통 나의 친구 조일묵(趙一默) 얘기가 되었습니다.
조일묵씨는 정부로 부터 산업 문화흔장도 타고 국가 유공자 훈장도 여러 번 받은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머나먼 미국 땅에서 병마에 시달리면서 여생을 쓸쓸히 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막힌 인연이 좁은 공간 중국어반에서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만나게 되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 입니다.
나의 친구 담임 선생님은 나에게도 곧 담임 선생님이 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송 선생님을 깎듯이 잘 모시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82 - 75 = 7 송 선생님과의 나이 차이는 7세 밖에 안나지만 친구의 은사로 깎듯이 잘 모실 생각입니다.
송 선생님은 당장 오늘 밤에 일묵에게 전화를 하라고 하시지만 나는 외롭게 병마와 싸우고 있는 일묵이 한테 아직 까지 전화를 못 하고 있습니다.
외로이 병마와 싸우고 있는 그에게 이런 얘기를 전 해 봐야 어렸을 적 담임 선생님께도 죄스러워 할 것만 같고 친구는 저토록 쓸쓸히 누워 있는데 나만 즐겁게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을 알리게 되면 그는 얼마나 가슴이 며지겠습니까.
해서 나는 전화를 못 하고 있는 것입니다.
회식중에 비가 많이 쏟아지고 있어 회식 시간이 길어지고 막걸리 병 숫자가 늘어만 갔습니다.
세상에 이렇게도 묘한 인연이 어디 또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두 번째
하얀 빵 모자 쓰신분이 송희성 선생님, 열심히 말씀을 하시고,
송 선생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는, 홍 반장, 신 여사, 이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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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산 노인복지관에서 만난 아주 묘한 인연
2010. 8. 20. 오후 3:5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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