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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處女作, 泡沫(포말)이라는 詩를 생각하며
걸 풍
지금 생각 하면 부끄러운 習作에 불과 하지만,
자유당 정권 말기 찢어지게 가난했던 대학 시절 일찌기 대학 신문에 泡沫이라는 詩를 발표한 바가 있었다.
가냘프게 흔들리는 풀섶에 가까스로 붙어다려 刹那(찰라)를 못 버티고 흩날려 꺼져 버리는
泡沫!
너는 도대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이더냐.
미풍에도 흩날리는 민들레꽃 처럼 잡을려 해도 잡혀지지 않는 허공만 같아라.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 앉으면 있지도 않은 둥지 찾아 헤메던
그 때의 나,
슬픔에 잠긴 눈망울로 내 인생은 포말 같다고 생각을 하며 젊어 한 때 고생을 하며 살아 본 적이 있었다.
아픈 가슴 두드리며 눈물로 달님과 얘기를 나누며 달빛을 노래 부르고 별님을 쳐다 보며 천근 무거운 다리로 금호동 돌산 언덕배기를 오르던 나,
나는 찢어지게 어렵게 사는 姑母네 천막집 단칸방으로 염치없이 기어 들어 갈 수 밖에 없었다.
그 단칸 방엔 고모 내외와 어린 조카들 네명 그리고 나를 포함해 일곱명이 몸을 쪼그리고 발을 맞대어 새우 잠을 잤고,
때론 차마 그 단칸방에 들어 갈 수가 없어 어두운 밤 눈물로 주위를 맴돌기도 했고,
후배 자취방에 찾아가 신세지기도 하고 친구 자치방에서 밥도 지어 주면서 신세를 진 일도 있었고,
여름방학 겨울방학 때는 전국 무전여행을 다니기도 했었다.
무전여행중에 우리들의 친구 마산의 이광석 시인집도 찾아 갔고 밀양의 장인호 친구네도 찾아 갔었지,
아마도 그 때 송산땅 정대구 시인네도 들렸을거야.
지금 생각 하면 내 인생의 황금기였던 그 때 나는 放浪을 했고 徘徊를 했었지,
그런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국내최고의 신협극단 멤버가 되어 유치진 선생 작 이해랑 연출 ~ 한강은 흐른다~에 출연 할 수 있는 행운이 따라 주었는지 지금 생각을 해봐도 소설 같은 남의 얘기만 같다.
지금 나는 까마득한 옛날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 나는 放浪詩人같은 착각을 하면서 放浪生活을 했었고 그 생활을 記錄했던 放浪記를 눈물을 씹어 먹으며 모두 다 불살러 버리고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고 글 쓰는것을 다 접고 군에 입대를 했었고 제대 후에 바로 먹고 살기 위해 공무원 생활을 시작 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의 습작을 다 불 태워 버렸기 때문에 대학신문에 발표 했던 나의 處女作 泡沫도 다 어디로 갔는지 잘 기억이 안난다.
이 사실은 지금 까지도 돌아 가신 우리 부모님도,
지금의 내 친 형님도 내 누이동생들도,
내가 좋아 하는 정대구 시인도 구중서 박사도 그 밖의 다른 어떤 친구들도
그 누구도 모르고 있고,
다만, 내가 처량하게 자주 마주 대하며 독백을 했던,
그래서 나를 지켜 봤던 달님과 별님과 그리고 하느님만이 알고 있다.
그러니 솔직히 고백 하건데 공부를 제대로 할 수나 있었겠나.
먹고 잘 곳을 걱정 해야만 하는 주재에 책 한 권을 제대로 사 볼 수가 있었겠나,
그저 죽으나 사나 오로지 강의 시간에 노-트 하나에 매달려 필기를 하며 선생님 강의만 열심히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책 없이 집도 절도 없이 어렵게 공부를 했었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그래도 詩論이나 文學槪論(문장론?) 성적은 그래도 비교적 좋았었다고 기억 된다.
대학 시절 강당에서의 시 낭송 때 눈물로 빚어진 詩 泡沫을 나는 그 때 울부짖는 목소리로 대 강당을 울렸었다.
포말 같은 서러운 아픔이 폭발 했고 실내는 너무나 조용 했었다.
한참을 멎지 않고 울려 퍼졌던 그 박수 소리 지금도 그 때 그 장면이 눈물겹게 눈에 서언 하다.
이 글을 쓰면서 지금 나는 울고 있다 왜 이리도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한 많았던 청춘 나의 비참했던 학창시절이 走馬燈 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가냘픈 풀 잎에 간신히 겨우 매달려 찰라를 못 견디고 꺼져 가는 너, 泡沫 !
너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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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處女作, 泡沫이라는 詩를 생각하며
2010. 9. 26. 오전 6: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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