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길

2010. 9. 26. 오후 4:05:38

글자
 
 
 
      벌초 길
                         강  훈 정
 
 
      한 시절 눈부시게 뜨겁던 볕이
      야트막한 능선 한편에 외로운 그늘 서너 뼘쯤 남아있는, 그리고
      그 사이로 또 한세월이 가고 있다
 
      이대로 내버려 두어도 앞뒤로 곧 지고 말 것을
      단 한 번도 누구든 원망해 본 적 없는 어린 풀들에게
      어떤 이유도 말하지 않은 채 날 선 가위를 들고 허리를 굽혔다
      주어지지 않은 자격으로 .
 
      잠시 사랑했던 이름만으로는 될 수 없어
      네 지나간  자리에 와닿는 것은 언제나  허전한 바람
      억새풀 하나가 앞을 막는다
      어제 같은 날인가해도 우린 어느새 멀리 와 있나 보다
 
      아슬한 가지 끝에 서성이는 풀벌레들
      이제 어느 처마에서 비를 긋겠나
      참나무 늙은 돌배나무의 뒤틀린 그림자
      설움에 눌리고 잘려나간 시린 등 허리는
 
      어느 달빛에 하얗게 마를 것인가
     
      자, 한 잔
      눈물어린 것이 어디 술 뿐 이겠냐 마는
      그래도 한 잔
 
 
     
      2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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