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크고, 첫째가는 /김영춘 베드로 신부

2008. 11. 7. 오전 6:46:50

글자
김영춘 베드로 신부│평화방송,평화신문 주간

인생의 경륜이 쌓이면서 제가 대답하기 싫어하는 종류의 질문이 있습니다.
"가장" 또는 "최고"와 같은 수식어가 붙는 질문들입니다.
예를 들어, "신부님은 어떤 음식을 가장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곤란해집니다.
어떤 때는 한식이 좋지만, 어떤 때는 중식이, 어떤 때는 일식이, 어떤 때는 양식이 좋기도 합니다.
음식은 골고루 먹어야 건강한 것인데, 딱히 특정 음식을 집어내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매운 음식 빼고는 다 좋아합니다"라고 두루뭉술하게 답변을 합니다.
본당에서 사목하시는 모 신부님은 몇몇 신자에게 자신이 최고로 좋아하는 음식을 솔직히 말했다가 후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구역반 모임에 갈 때마다 자신의 수저 앞에는 늘 그 음식이 올라와 곤혹스러웠다고 합니다.

실제로 "가장" 또는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는 질문은 즉각적으로 응해서는 안 되고, 시간적 여유를 갖고 신중하게 대답해야 합니다.
또한 답변을 할 때도 가급적이면 "가장"이나 "최고"라는 단정적 표현을 떼어내는 것이 현명합니다.
오직 한 가지만이 "가장"이나 "최고"가 될 수 있기에, 본의 아니게 그것 이외의 다른 모든 것은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위험을 피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질문을 받습니다.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는 표현대로, 그는 예수님의 답변에 시비를 걸기 위해 질문을 던집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 당시에는 율법의 계명들이 613가지에 이르렀고,
바리사이들에게도 어떤 계명들이 보다 중요한가에 대한 일치된 견해가 없었습니다.
율법 교사는 그 많은 계명 가운데 예수님이 한 가지를 선택하기를 기다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저 없이 답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분명하게 덧붙이십니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저는 이 표현에서 예수님의 강렬함을 느낍니다.
율법 교사는 시비를 걸려고 "가장 큰" 계명이라고 물었는데, 예수님은 한 술 더 떠서
"가장 크고"에 덧붙여 "첫째가는" 계명이라고 단정적으로 답변하십니다.
율법 교사는 예수님에게 시비를 걸 수 없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은 당시 율법의 613가지 계명에는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둘째로 꼽으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는 율법 교사의 함정을 파놓은 질문에 빗대어,
시비 거리를 전혀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당시의 수많은 계명은 모두 제쳐 놓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훨씬 중요하고 큰 계명임을 분명히 가르쳐 주십니다.
더 나아가서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는 예수님의 표현은
사랑이 모든 계명과 가르침의 근본임을 극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의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최상급의 표현은 사랑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자 정체임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큰", "가장 우선적인", 그리고 "최상의" 계명으로 꼽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우리들 자신의 삶에서도 "가장 큰", "가장 우선적인", "최상의" 실천으로 드러나고 있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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