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죄인들과 세리들과 어울렸지요.
죄인들과 세리들이 그분께 몰려왔습니다.
그들은 바리사이들, 율법학자들로부터,
즉 율법주의자들로부터는 배척당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반기고,
그들을 우대해 주었습니다.
모세 율법과 조상들 규정법에서 오도가도 할 수 없던 사람들,
죄인으로 죽을 수 밖에 없던 이들,
죄인으로 규정된 이들이 그분을 통해서는 사람 대접을 받았습니다.
당신 율법의 규정 사회에서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들이었지요.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이번 주교대의원회의에서
'교회가 자비로와야 한다'고 하였고
특히 교회 성사와 구원생활에서 멀리 떨어진 '재혼자'들에 대한 자비를 언급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양 백마리 가진 이의 말씀을 전하면서
한 마리 잃은 양을 찾을 때 기뻐하고,
은전 열닙가운데 하나를 잃고 나서 찾으면
가족과 이웃을 불러놓고 함께 기뻐한다고 하였고...
그분은 사회에서 구원에서 멀리 떨어진 이들이 돌아오는 것을
참으로 좋게 여겼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팎에서
교회에 들어와서 조금있다가 떠나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믿음이 얕거나, 경제와 시간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받아서,
그리고 우리가 돌보지 못하고
교회가 신뢰를 주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이유로 떠나가 구원의 길에 멀리한 이들이 많습니다.
가까이, 멀리 떠나가서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누군가, 이들을 돌볼 사람들도 부족합니다.
예수님은
떠나가서 어려움속에 있고, 점점 구원의 길에 멀어져 있는 그들을
안타까워하시며
그들을 돌아오기를 바라십니다.
한마리 잃은 양을 찾기를 바라십니다.
더욱 힘들여 찾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사회속에서
세속의 가치에서 경제적, 직업적이거나
윤리적, 환경적 이유로 주님 품에 돌아오기를 어려워하는 이들에게
그들을 주님의 품으로,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비록 쉬운일은 아닐지라도,
그런 교회가 되기를 희망하고 노력합니다.
사실
모든 것을 제쳐놓고
구원의 길에 대한 열망을 가져야 합니다.
공동체의 구원을,
특히 소외되어 있는 수많은 이들의 구원을 위해서
발을 디디고 나가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현장에서 그들을 동반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사실
모든 것을 제쳐놓고
구원의 길에 대한 열망을 가져야
합니다.
불가능한 것 같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통해서 구원에 대한 열망이
드러냐야한다는!
기도를 통해서든, 애덕을 통해서든, 모임을 통해서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그분께 영광이 되고
모든 이들의
구원에 관한 것이어야함을 다시 헌 번더 다짐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