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김 교회는 노동을 노동하는 인간이 존엄하므로 신성한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노동하는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 갈 수 있어야 한다.
말씀(노동하는 인간 머리말)
노동으로 인간은 먹을 것을 마련한다. 노동으로 인간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참여한다. 무엇보다, 노동으로 인간은 그가 살고 있는 사회의 도덕적 문화적 수준을 향상시킨다.
노동은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활동 모두를 의미한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어 땅에서 살며 그것을 다스릴 권한을 받았다(창세 1,26). 그러므로 처음부터 인간은 노동의 사명을 받은 것이다.
노동은 인간을 다른 창조물과 구별짓는다;
오로지 인간만이 노동을 할 수 있다. 노동은 인간들의 공동체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개개의 인격체를 나타내는 표지요 이 표지를 통하여 우리는 노동의 실재를 파악하는 것이다.
배움 가톨릭 교회의 노동관(勞動觀)
-인간 노동과 그 문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노동헌장 반포 90주년 기념 회칙 '노동하는 인간'
(LABOREM EXERCENS)을 중심으로
1. 서론
인간의 생활은 노동으로 이루어지며, 노동에서 인간은 그 독특한 존엄성을 얻는다. 또한 노동은 노고와 고통을 동반하고, 국가 및 국제적 차원에서의 사회 불의도 안고 있다. 인간이 제 손으로 일하여 얻은 빵을 먹는다(시편 128,2 참조)는 것도 진리이지만(이 말은 과학과 발전, 문명과 문화의 양식도 의미한다), '이마에 땀을 흘려'(창세 3,19)얻은 빵을 먹는다는 것도 진리이다 ; 말하자면 개인적인 노력과 노고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각 사회와 전 인류의 생활을 어지럽게 하는 긴장과 충돌 그리고 위기들 속에서 얻는 빵을 먹는다는 말이다.
요즘 기술, 경제, 정치적 분야에서 새로운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 새로운 발전이란 자동화, 에너지 및 원자재 가격 상승, 한정된 천연자원의 고갈현상을 가져온다. 또한 수세기 동안 남에게 억눌려온 민족들이 국제협상에서 정당한 지위와 몫을 요구하며, 국가들 사이에서 부상하고 있는 사실도 포함한다. 이 모든 요구는 경제구조와 노동분배구조를 재조정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수백만의 노동자들에게 일시적인 실직이나 재훈련을 받아야 하는 불행을 안겨줄런지도 모른다. 발전된 나라들에게는 이러한 변화가 생활수준을 낮추고 경제성장을 더디게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난한 나라에 사는 수백만명의 사람들에게는 위안과 희망을 안겨줄 수도 있다.
교회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존엄성과 권리에 대해 마땅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존엄성과 권리가 침해될 경우, 교회는 이 침해상황을 고발하고, 이러한 변화들을 이끌어 인간과 사회의 진정한 진보를 보장해야 하는 것이다(1항).
2. 노동과 인간
1)노동은 신성하다.: 교회는 노동을 존엄(尊嚴 신성神聖)한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노동의 주체인 노동하는 인간이 존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이 하느님 모습대로 창조되고, 노동을 하도록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초대받았으며(창세 1,27.28), 우리 노동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세상을 계속 만드시고 또 구원하시기 때문이다(4).
2)노동자: 특히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그것도 노동자인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셔서 직접 노동하심으로써, 노동의 복음을 선포하셨다(6). 그러므로 인간이 '노동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 '인간을 위해' 있다. 여러가지 종류의 노동이 각각 다른 가치를 지닌 물건을 생산해 낸다 하더라도, 각각의 노동은 노동자의 존엄성에 의해서 평가되어야만 한다. 어떤 목적으로 노동하든지 간에 노동 그 자체로서는 의미가 없다. 사회가 인간의 노동을 아무리 하찮게 평가한다 해도 노동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다(6),
3)올바른 가치서열에 대한 위협: 인간만이 노동을 하는데,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고, 노동을 통해 자기를 실현 완성시켜 나가며, 또한 사회전체에 대하여 봉사한다.
그러므로 노동의 대가(휴식으로서의 여가, 휴가 포함)는 자선이 아니라 정의의 실천이기에, 당연히 노동하는 인간의 현재와 미래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수준이어야 한다. 또한 인간의 노동을 '노동력'이라는 상품으로만 취급하는 유물론적이고도 경제주의적인 오류에서 벗어나야 한다(7).
4)노동자들의 결속: 인간의 노동을 생산의 도구로서만 보고 자본만이 생산의 유일한 기반이요 목적이라고 보았던 산업화 시기에는, 노동자들이 '하늘을 향해 복수를 요청하며'(신명기 24,15; 창세 4,10)자신들을 짓누르던 부당하고 악랄한 체제에 대해 반발하였고, 또 사회도덕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정당한 처사였음이 인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단결운동은 노동자들의 지위가 떨어지고 이들이 착취당하는 어디에서나, 그리고 가난과 굶주림이 있는 곳 어디에서나 마땅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며 그리스도께 대한 충실성의 증거요, 그래야만 진정으로 '가난한 이들의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8).
5)노고(勞苦): 육체노동자들은 땀흘려 일하는데, 정신노동자들은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결정을 내릴 책임을 지닌 사람들에게도 익숙하다. 이러한 노고에도 불구하고 노동은 인간을 위해 좋은 것이다. 그것이 유용하고 즐겁기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표현하고 증가시키므로 좋은 것이다. 노동을 통해서 자연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충만해지고 '보다 더 인간답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근면의 덕을 제외하고 노동이 집단수용소에서 강제노동이라는 형벌로, 압박하고 착취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때 인간성의 격하를 가져온다(9).
3. 오늘날에 있어서의 노동과 자본의 갈등
1)노동이 자본보다 우선하며 우위에 있다: 노동이 생산의 원인이지만 자본은 생산의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노동이 자본보다 더 중요하며 우선한다. 아울러 자본은 땅의 자원이기도 하고, 자원을 이용하기 위하여 노동에 의해 창조된 결과이다. 한편 인간이 노동을 시작하는 첫 단계에서는 언제나 자원이라는 창조주 하느님의 선물이 있다(12.13).
2)노동과 소유: 재산은 노동에 기여하기 위하여 노동을 통해 얻어지는 생산 수단이다. 생산 수단을 개인의 재산으로 독차지하여 '노동'에 대립되는 '자본'의 형태로 만들거나, 더구나 노동을 착취하려고 한다면, 이는 바로 수단과 목적을 거역하는 것이다.
소유권의 정당한 명분은 개인소유권이든, 공동소유권이든, 집단 소유권이든 간에, 오로지 노동을 위해서만 기여해야 한다는 점이고, 노동에 기여함으로써 재화의 보편적인 목적과 재화의 공동 사용권을 성취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적당한 상황에서는, 어떤 생산수단의 사회화(공동소유)도 받아들일 수 있다. 노동자들이 기업경영 또는 이윤배당에 참여한다든지, 노동에 의한 주식소유 등 '노동수단의 공동소유'를 위한 제안을 할 수 있다(14).
단지 소유자의 손아귀에서 생산수단(자본)을 빼앗아, 국가에 넘겨 준다고 해서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충분히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사회화란 각자가 자신의 노동을 기반으로 하여, 다른 모든 사람과 함께하는 커다란 일터에서, 자신도 하나의 소유자라고 온전히 생각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14).
그 때 인간은 정당한 보수를 받을 수 있으며, 자신의 노동이 단지 기계의 부속품처럼 취급당하지 않으며 '자신을 위해' 노동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인격적인 가치가 존중될 때 생산성이 높아지고 경제가 발전한다(15).
4. 노동자의 권리(노사관계의 당사자들)
1)노사관계의 당사자인 노동자와(직접)사용자 그리고 정부, 국제관계(간접 사용자-노동계약을 제한하는 요인들과, 노동 현장에서 정당하거나 부당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모든 요인-상호의존체제인 국제경제하에서의 노동정책 16.17)의 삼자는, 보조성의 원리 속에서 공동선을 지향한다(18).
2)고용: 특별히 정부는, 다수의 노동자가 노동할 수 있는 취업의 권리와 기회를 제공하여야 한다. 교육과 직업훈련을 마치고 일을 하려는 진지한 소망과 공동체의 발전에 책임있게 참여하겠다는 각오를 지닌 젊은이들이, 실업 때문에 좌절하는 것을 보기란 고통스러운 일이다. 실업수당을 지급해야 할 의무는 생명과 생존의 권리에서 나오는 의무이다. 발전에 있어서 기본요소이자 발전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법은, 노동의 목적과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관점에서, 그침 없이 인간의 노동을 재평가하는 일이다. 발전은 인간을 통해서, 인간을 위해서 이루어져야 하고, 그리고 인간 안에서 그 결실을 맺어야 한다(18).
또한 노동자들 간의 격차가 심하지 않도록 하며, 또한 무엇보다 특히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지키기 위한 자연법적 기본권리인 단결, 교섭, 쟁의 3권이 정당한 것이고, 또 온전히 지켜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18.19).
3)임금과 사회적 혜택: 어느 사회 경제 체제가 얼마나 정의로운가 하는 것은, 결국 그 체제 안에서 인간의 노동이 정당한 보상을 받느냐, 못 받느냐 하는 데에서 평가된다(19). 또한 사회보장(의료혜택, 휴식과 연금의 권리 와 노후대책, 산업재해보험)과 복지제도를 실시하여야 한다. 아울러 노동환경과 작업과정에 대한 권리들도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들이다. 이 모든 권리들이 보장되는 가운데, 노사관계가 발전하기 위해서, 노동조합이 필요하게 된다(19).
4)노동조합: 이 모든 권리들은 노동자들의 자기 보호를 위한 필요성과 더불어 다른 또 하나의 권리, 즉 '단결권'을 갖게 한다. 단결권에 의해 형성된 모든 단체를 노동조합이라 부른다. 노동의 사회적인 힘은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에 있다. 노동조합을 통해서 노동자들이 보다 많이 '소유'하게 될 뿐만 아니라, 보다 나은 '존재'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20).
5)대부분의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지만 농업노동은 중요하다(21). 또한 인간의 존엄성보다 경제적인 이익을 우선시하여, 강하고 건강한 사람이 약하고 병든 사람에게 하는 차별이, 장애자들의 노동에 적용되지 않기를 바란다(22). 또한 이민 노동자들에 대해서, 노동의 가치는 동일한 기준에 의해 평가되어야 하지, 국적이나 인종 혹은 종교에 따라 달리 평가되어서는 안된다(23).
5. 노동의 영성
1)교회의 임무: 노동이 언제나 인간의 행위인 이상, 육체와 정신이 온전히 하나로 결합된 전 인간이 노동을 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하느님의 말씀, 구원의 복음 역시 전 인간을 향해 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인도되어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노동을 어떻게 보시며, 노동이 어떻게 하느님의 구원계획의 일부가 되는지를 마음 밑바닥으로부터 갈구한다.
교회는 노동의 인간적 가치라는 관점에서, 노동에 관하여 말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는 복음화라는 교회 사명의 일부이다. 동시에 교회는 노동의 영성도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노동을 통하여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참여하며,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직과 봉사직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와의 친교를 깊게 할 수 있어야 한다(24).
2)창조사업에 참여하는 노동: 영성적으로 볼 때, 첫째, 인간의 노동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참여하는 것으로써, 둘째,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직접 노동하심으로써, '노동의 복음'을 선포 실천하셨다(25.26).
인간의 가치는 무엇을 가졌느냐에 있지 않고, 어떤 인간이냐에 있다. 마찬가지로 보다 나은 정의와 보다 넓은 형제애와 보다 인간다운 사회 관계의 질서를 확립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기술의 발전보다 훨씬 값진 것이다. 현대의 사상을 지배하는 주제인 진보와 발전은 이와같은 노동의 영성의 결실로서만 이해될 수 있다. 이것이 '노동의 복음'의 가르침이며 또한 하느님의 계획이다(26).
3)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노동에 대하여 말하는 것: 또한 인간 노동은 하느님의 활동을 모방하는 것으로, 인간에게 존엄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노동은 불가피하게 '고생'과 연결되어 있다.
노동의 '고생'에 관한 복음의 마지막 말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의 신비안에서 발견된다. 부활의 신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인간의 불순명과 대조를 이루는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그분의 순명을 포함한다(로마 5,19 참조). 또한 성령의 힘으로 부활하심도 드러낸다.
노동의 땀과 고생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일에 사랑으로써 참여할 수 있게 한다. 이 '구원의 일', 즉 구원사업은 십자가 위에서의 고통과 죽음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노동의 고생을 견디어냄으로써, 인간은 인류의 구원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협력하는 것이다. 인간은 매일 제 십자가를 짊어짐으로써,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라는 것을 드러낸다.
그리스도인은 노동 안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작은 부분을 발견하며, 그리스도와 같은 정신으로 이를 받아들인다. 노동 안에서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우리도 '새로운 하늘과 새 땅'의 선포를 듣는다(2베드 3,13; 묵시 21,1). 노동의 고생을 통해서, 인간과 세상은 '새로운 하늘과 새 땅'에 참여하는 것이다. 고생이 없이는, 십자가가 노동의 영성에 꼭 필요한 지를 절대로 확인할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이 십자가는 노동 자체로부터 솟아 나오는 새로운 선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 노동의 결실인 이 '새로운 선'은 이미 정의가 깃들여 있는 '새 땅'의 한 작은 부분이 아닌가(2베드 3,13)? 노동이 십자가의 작은 일부라면, 그리스도의 부활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공의회는 말한다. 새로운 땅에 대한 기대가 현세의 이 땅에 대한 노력을 약화시켜서는 안될 것이고, 오히려 더욱 자극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예고해 주는 인간 공동체가, 이 땅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현세적 진보를 하느님 나라의 성장과 구별해야 겠지만, 이것이 인간 사회의 질서를 보다 더 낫게 하는 데에 이바지하고 있는 한,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서도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사목 헌장 39항 참조).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적인 진보에 있어서 뿐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성장에 있어서도 자기가 하는 노동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성령의 힘과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모두는 하느님 나라로 초대받고 있는 것이다(27).
- 요한 바오로 2세 1981. 9. 14
나눔
1. 교회는 왜 노동을 신성하고 존엄하다고 합니까?
2. 교회는 노동과 자본을 어떤 기준에서 규정짓고 구분합니까?
3. 교회에서 말하는 '노동의 복음'이란 무엇이며, 그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4. 교회는 노동하는 인간이 사회정의를 실천하는데 있어서, 다른 사람에 대한 투쟁이 아니라 정의를 위한 투쟁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직장을 복음화 할 때, 이러한 투쟁을 하게 됩니까?
5. 주님의 수고 수난과 부활의 영광을, 내가 땀흘려 노동하여 얻은 결과와 연결시켜 나누어 봅시다.
기도 "무슨 일에나 사람을 섬긴다는 생각으로 하지 말고 주님을 섬기듯이 정성껏 하십시오. 여러분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상으로 받게 되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골로 3,2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