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김 완성을 향한 인간의 '성(性)'
말씀(에페 5,1-3a.4c.5)
5 1여러분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닮으십시오. 2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셔서 하느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3음행이나 온갖 추행이나 탐욕에 찬 말은 입에 담지도 마십시오. 4성도들에게 어울리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말입니다. 5음행하는 자와 더러운 것을 하는 자와 탐욕을 부리는 자는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나라에서 상속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탐욕을 부리는 자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입니다.
배움(톰 모로우 저, 정진형 역, 나는 누구에게 속하나?-젊은이들의 선택, 48-56면, 분도출판사, 1982)
성(性)무엇이 문제인가? 성이란 단순히 인간 육체의 성욕을 자극하는 영역만을 말하며, 모든 사람들의 삶의 궁극의 목적은 성적 쾌감에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성은 성행위(성교)와 동의어가 되어 가고 있으며, 또한 침실에서 얼마나 잘 실행해 가느냐 하는 것과 동일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외설적인 선전문구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전적으로 부정적인 단죄에서 끝날 수만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성적인 면을 직접적인 성행위가 아닌, 그 이상의 방법으로 생활함으로써 터득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의견을 내세워야 한다.
1. 성은 곧 소속되는 것이다.
성은 서로에게 속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관계인가를 말해 준다. 성은 서로의 관계이다. 우리 인간의 성적인 면은 우리 자신을 상대방에게 더 잘 표현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 준다. 우리가 다른 한 사람과 또는 다른 사람들과 가지는 인간 관계의 종류와 그 정도는, 우리가 선택한 삶의 방법에 있어서, 성과 그 표현이 우리 각자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 하는 것을 결정한다.
결혼한 부부들은 정신과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됨으로써, 그들이 서로에게 속한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그들의 성행위는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하는 것을 말해 주며, 서로가 상대방의 일부분이 되도록 초대하는 것이다. 이와같이 자신이 상대방 안에서 완전히 일치됨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백성과 갖는 유대관계의 신비의 상징이다. 결혼한 부부들이 끊임없이 서로를 보살피고, 서로를 위하여 관심을 가지고 서로를 나눔은 서로에게 속함으로써 완전한 결합을 이루는 징표가 되는 것이다. 그들의 성행위는, 그들 두 사람은 서로를 떠나서는 그들 자신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들의 의미있는 행위는 그들 자신으로부터 자기를 끄집어 내어, 서로에게 삶의 구심점을 두는 모험을 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사제나 수도자들은 그들의 삶을 다른 사람들을 위한 봉사에 바치고 있다. 사제나 수도자들 개개인의 성적인 면의 표현은, 그들이 사도직을 수행함에 있어 얼마나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속하기로 했는지,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같은 길을 걷는 공동체 일원들에게 얼마나 소속되어 있는가 하는 데서 충분히 나타나고 있다.
2. 온전하고 전적인 결합
당신은 현재 한 인간으로서 혼전(婚前)또는 혼외(婚外)의 성행위와 관련된 문제를 직면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다른 한 사람과 성적인 관계를 갖기 전에, 당신은 "이 사람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리고 나는 상대방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하는 것을 자신에게 정직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서로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당신과 상대방 사이에 항구적이며 둘만이 갖는 관계를 지녀야 한다. 당신들의 관계에서 이 항구성과 둘만의 독점적인 면이 없다면 그 관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두 사람은 서로에게 아무 중요한 존재가 될 수 없다. 더구나 당신과 상대방의 관계가 의미없고 소중하지 않는 관계라면, 당신들 사이의 성행위는 다만 서로가 두 육체를 이용하는, 생명을 잃은 공허한 행위에 지나지 않게 된다. 아마 일시적인 육체적 희열을 느낄지 모르겠다. 그것은 다만 두 사람 사이의 비인격적이고 기계적인 성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먼저 상대방에게 자기를 바치지 않고서, 가지는 두 사람의 성행위는 참된 의미가 없다.
이와 반대로 결혼하여 서로에게 항구적으로 속하며, 독점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두 사람 사이의 성행위는, 그들이 인격적인 결합의 완전한 표현인 것이다. 성행위 안에서 상대방에게 자신을 넘겨 줌은, 그들이 서로에게 속하며 상호의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들의 관계는 침실에서 시작해서 침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끊임없이 서로를 바치는 가운데, 그들 인생의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그런 관계로 깊어지는 것이다. 그들은 성행위를 통해서 서로에게 "나는 나 자신으로는 불완전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과 모든 사람들 앞에서, "나는 당신 안에서 완전하고 진정한 기쁨을 발견하기로 했습니다" 라고 천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확신과 정신자세를 가짐으로써, 당신들은 성행위를 통해서, 두 사람이 가장 의미있는 방법으로 서로를 알 수 있게 된다.
결국에 가서 당신은 혼전이나 혼외의 성행위에 대해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당신은 성행위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두 사람 사이의 결합으로서, 영원히 자기를 바치게 하고, 그 사람에게만 성실할 것을 요구하는 관계라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성행위란 아무하고나 별 의미없이, 또 서로를 바치지 않고서도 할 수 있는 행위라고 생각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3. 선택
결혼을 하거나 사제직 또는 수도생활을 택하거나간에, 젊은이는 그 길이 자신의 인간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고 선택하는 것이다. 어떤 길을 택하든지간에, 성적인 충족은 당신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삶에 관련된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당신이 그들에게 누구인가 하는 것에 달려 있다.
어떤 젊은이는 결혼한다는 것을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며, 어떤 이는 가족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하여, 사제나 수도자의 길을 또는 결혼하기를 원할 수도 있다. 이 각각의 경우에 있어서, 문제는 어떤 삶의 길을 택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동기에서 그런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4. 삶의 한 표본
젊은이들은 결혼한 부부들을 보고, 그들의 삶이 따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 자신들도 결혼을 한다. 사제직과 수도생활에 매력을 느끼는 젊은이들도 그들이 알고 존경하는 사제나 수도자를 통해서, 그들의 소명을 알게 되고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예수님의 삶은 결혼생활과 사제생활과 수도생활을 위한 하나의 본보기로 되어 있다. 남편과 아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셨듯이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 사제나 수도자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을 바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예수님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자유로이 독신생활을 선택하셨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셨으며, 그분과 삶을 같이 나누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셨다. 그의 동료들 중에는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었으며 기혼자도 독신자도 있었다. 예수님은 이 사람들에게 완전하고 충만한 방법으로 속하셨다. 예수님은 그의 성적인 면을 성행위로 충족시키지는 않았다. 그분은 그를 따르기로 선택한 모든 사람에게 자기를 속하게 함으로써 그의 성적인 면을 표현하고 충족시켰던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따뜻함에 감동되셨으며,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셨다. 그분은 그들에게 마음을 여셨으나 그들에게 소유당하지는 않으셨다. 그분은 말과 행동에 대한 자신의 독립성을 소중히 하셨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분의 독립성이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는 데 있어, 그들에게 의존하지 못하게 하지는 않았다. 그분은 그들에게 지상에서의 어떤 보상도 약속하시지 않았고 당신 자신과 그들과 함께 있는 그의 존재만을 약속했을 뿐이다. 예수님이 고통 중에 있을 때 제자들이 깨어서 기도하게 해 줄 것을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친구 중 하나인 유다가 그에게 입을 맞추면서 배신했어도 그를 단죄하지 않을 만큼 그의 친구들에게 속해 있었다. 그분은 친구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셨으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이 위대한 희생은 자유로운 결정에 의한 것이었다.
5. 본래의 질문, "성, 무엇이 문제인가?" 라는 것을 "우리는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하는 새로운 면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하여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그것은 자기가 생각하는 최상의 방법으로 자기의 삶을 살기로 한 각자의 결정을 끊임없이 펼쳐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완성은 누구에게나 성적인 충족 이상의 것이 되겠다.
우리가 선택한 인생을 충만히 살고, 그 소명을 완성하는 것은 우리가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자신에게 얼마나 진실한가에 달려 있다. 어떤 삶이 다른 삶보다 더 가치있는 것인가를 비교할 수는 없다. 모든 삶의 길은 각자 위엄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한 삶을 살기로 자유로이 선택한 사람들이 바로 그 삶을 충만하게 살고 가치있게 만드는 것이다. 각각의 소명은 다른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 모든 삶은 서로를 완성시키고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지, 서로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하나의 소명은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되는 것, 온전한 인간이 되어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거룩하다는 것은 자기가 살기로 결정한 그 삶을 통해서, 자기자신을 온전히 실현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는 복음말씀을 실천하며 자기를 완성하는 것을 말한다.
나눔
1. 결혼할 때까지 성행위를 미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2. 사랑한다는 것과 성행위를 한다는 것이 같다고 생각합니까?
3.(당신이 결혼하였다면)남편과 아내가 서로에게 더욱 속하게 하는 데 성적인 결합이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십니까?
4.(당신이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면)당신은 완성을 향해 나아가면서 결혼과 사제, 수도생활 중 어느 길을 택하시겠습니까?
관찰 내 삶에서 어떻게 성을 표현하고 있습니까?
판단 하느님께서 나에게 어떤 방법으로 성을 표현하기를 바라실까요?
실천 내가 인간의 완성을 향해가면서 앞으로 어떻게 성을 표현하고 싶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