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또 다시 한 분의 좋은 친구를 국경 넘어로 멀리 떠나 보내고 좋은 친구가 될 한 분을 맞이하였습니다.
이 두 분은 우리들의 영적인 아버지 이면서 믿음살이에 큰 도움을 주셨고 주실 분입니다. 노원성당 신자로서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건데 때는 소위 상계 신시가지가 주거단지로 완공되면서 입주를 시작한 1987년말부터 신자 수가 늘어 현재의 대성당 자리에 는 시각장애 교우 200 여명이거주하는 성모자애재활원의 연립주택이었고 지하에 상계동성당 관할공소인 소성당이 있어서 주일 하루에도 미사가 한번 뿐이었는데 1989년도부터 신자수가 폭증을 해서 주일미사시간을 7,8회로 늘리고 성당안에 들어올 수 없는 교우들은 밖에서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스피커 설치를 해도 밀려드는 신자들로 미사시간이 산만하기 그지 없었고 그렇게 3개월 정도를 지내오다89년 6월에 본당으로 승격을 해서 초대 주임 신부님으로 상계동본당 주임 신부님이셨던 황인국 (마테오) 신부님이 오시고 보좌 신부님으로는 김용화(바오로) 신부님이 오신 후 지금의 나눔자리 터에 ㄱ억자형 가건물 성당을 지어서 한 숨 돌리는가 싶더니 새 성전을 지어야 된다며 큼지막한 조감도판을 성당 정문옆에 새워놓고 붐을 조성하기 위해서 바자회도 열고 교우세대의 건축기금 신립방식은 자가세대와 세입세대를 구분하고 아파트 평수의 높낮이 별로 액수를 정해서 모금을 하다가 시각장애 교우들의 안식처 라고 할 수 있는 재활원이 혐오시설이라며 주변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처서 재활원측에서 성남시 인근에 대토를 구해 건물을 지어 이사를 간다며 1200평인 재활원 부지를 시세가를 한 푼도 떨구지 않고 판다고 해서 현 나눔자리 터의 가건물 성당부지는 애초에 아파트 단지의종교부지로 400평을 분양받았기 때문에 장소가 협소 할 뿐더러 앞으로 더 늘릴 방법이 없어서그 땅을 매입하기로 결정을 하고 재활원 측과 교섭을 하는데 상대가 시세가에 집착을 한데다 재활원 측이 원하는 가격에 사겠다는 다른 상대가 있다고 해서 흥정을 하는데 절충점을 찾을 수가 없어 교구장 중재로 45억원이 매매가로 결정이 되어서 성전건축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그 땅값으로 인한 빚을 갚느라 어려울 때 일수록 굳게 뭉쳐야 된다는 각오로 주임신부님을 정점으로 하여 교우들이 일심동체로 나서서 빚을 갚기 위해 참으로 눈물나는 과정을 겪어야 했습니다.
초대 주임으로 오신 황인국(마테오) 신부님 그 분은 자기관리에 철저 하신데다 신자들에 대한 처신을 잘하셔서 훌륭한 멋쟁이 신부님으로 통했고 노원성당 재임기간동안 너무나 많은 일을 하셨고 당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서 고초를 겪으시기도 하셨습니다.한번은 G성당이 재정상태가 어려워서 소유지인 경기도 포천에 있는 공원묘지를 같이 사용하는 조건으로 판다고 해서 계약을 했는데 나중에 G성당에서 말썽이 생기고 그여파로 그쪽에서 황 신부님께 항의차 방문도 있었고 또 내용증명을 수신(受信)하였는데 그 문구가 사실과 너무 동떨어지고 격해서 사제로 25년을 살아오는 동안 그렇게 마음
상해본적은 처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는 본당 관할지역이 중계동,하계동 일부 지역과 노원마을을 어우르는 상계 1동과6,7, 8,9,10동 전지역이다보니 너무 광범위해서 두 분 신부님의 일거리가 넘쳐나는 때가 다반사(茶飯事)이지만 그 일들의 중요성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어느 한 부분이라도 소홀히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각 처에서 이주해온 신자들에게 본당공동체 의식을 높이고 강력한 일치를 이룰 수 있도록 중점적인 교육을 많이 하시고 본당 봉사자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으시면서 특히 미사성제가 중심이 되는 전례에 관련된 봉사를 하신 분들에게 성의(誠意)와 열정(熱情)과 자제(自制)를 당부하시면서 전례가 바르게 서서 중심을 이뤄야 노원성당이라는 배가 순항(順航)할 수 있다는 말씀으로 주의감(注意感)을 일깨워주시면서 격려를 하셨고 모두의 열망이었던 성전건축을 계획하시면서 동분서주 하시다가 본당 사정이 일변하여 재활원 터의 매입에 많은 노력을 하셔서 성공하셨고 그로 인한 빚을 갚기 위해서 갖가지 수입원을 만들기 위한 창안을 하시고 그 중에 하나는 4,50대가 중심이 되는 대건회를 결성하라는 제안을 하셔서 창립총회를 하고 얼마 않되서 수입처를 농협으로 정하여 쌀 판매를 해보라는 권유를 하셔서 판매를 시작했는데 그 때는 쌀 소비가 많은 때였고 본당 관할지역이 넓어서 매주 120포이상을 팔았는데 배달과 외상을 수금하고 재고정리와 계산을 해서 본당사무실에 보고를 겸한 입금을 하고나면 밤 아홉시가 지나서야 집에 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황 신부님이 오시고 가실 때 까지 사제관이 본당내에 있질 않고 주변 아파트1027동9층에 있어서 사제관으로서는 부적격한 장소였는데도 불편하다는 한마디 말씀도 않으시고 고생만 하시다가 전임하셨는데 지금은 칠순의 년륜(年輪)를 넘기시고 은퇴사제로 계신다니 유수(流水)같은 세월이 무상(無常)하기만 합니다.
2대 주임으로 오신 임덕일(아마뚜스)신부님은 교구청에서 인사발령을 하기전에 오실 신부님 몇 분을 정해놓고 의사타진을 하였는데 노원성당은 부채가 많고 할일이 너무 많은데다 사제관이 성당 밖 인근 아파트에 있어서 선뜻 오겠다는 분이 없어 임신부님이 오시게 되었는데 발령이 난 후에 황신부님을 찾아 오셨는데 황신부님이 본당 현황파악을 하실 수 있도록 노원성당의 모든 사정을 체계적으로 말씀드리고 후임자이신 임신부님께"이런 저런 일들을 시작만 해놓고 한가지도 마무리 하지 못한 상황에서 과중한 채무만 떠 안기고 가게되니 고생을 대물림 하는 것 같아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라는 말씀을 하셨답니다.그리고 이임하는 날 미사강론중에 "후임자이신 임신부님이 찾아오셔서 저를 위로해 주시고 잘 해 내시겠다는 각오를 보여 주셔서 여러분들은 훌륭한 신부님이 부임하시게 되어서 기쁘실 것이고 저 또한 안심하고 갑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임 신부님의 신자들에게 다가가는 접근방식은 상대가 친근감을 표현하도록 유도하는 것 같은 유화(宥和) 제스쳐를 많이 하셔서 빨리 친해질 수 있었고 내게 그 분이 필요한 것이 있다면 나누고 싶은 마음의 정(情)도 있었습니다.
임 신부님도 많은 일들을 하셨는데 사제관을 짓고 그 옆자리에는 가건물을 지어서 대성전으로 꾸미고 지금의 나눔자리에 있던 가건물 성당은 개,보수(改,補修)를 해서 제,단체(諸, 團體)의 회합실로 사용하게 되었고 성당뿐만 아니라 주위 환경도 배려하는 나무를 심고 조경을 해서 주님의 집이 우리들 마음에 친화적(親化的)인 모습으로 보여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한번은 당신 영명축일 축하미사에서 어느 해설자가 영성체 후 묵상해설에서 "주님 인간세상 에서는 매우 오랜세월인 4반세기를 지나오는 동안 오로지 주님께 봉헌하는 삶을 살아온
임덕일(아마뚜스) 사제에게 영육간의 건강을 허락하시고 주님께 향하는 마음이 사제직을
받은 때의 결심처럼 다져지고 항구하게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또한 저희들은
목자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마음으로 순명하고 참으로 인간적인 친애(親愛)와 신뢰(信賴)로
좋은 친구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하였는데 그날 만찬석상(晩餐席床)에서
그 기도의 어휘(語彙)를 되풀이 하시면서 다짐 하시듯 좋은 친구가 되자고 하시며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분 또한 은퇴하신다니 저희들 인생이 저물어 가는듯 하여 그분과 함께 서글퍼 짐을 어찌 달래야 합니까? 임 신부님을 위해서 기도 많이 해주십시오.
3대 주임으로 오신 안경렬(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은 부임해 오신 날 부터 본당채무현황을
점검하시고 교구내 금융관계 부서에서 일 하셨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누적된 본당 빚을 갚는데 주력 하셨는데 가장 감사해 하고 공을 기려야 할 일은 한 해에수천에서 억대가 넘는 교구 납부금을 어떤 때는 면제 받기도 하시고 탕감 받기도하셔서 채무이행(債務移行)에 있어서 신자들의 부담을 크게 덜어주시고 당신 임기말에 채무를 종결(終結)하는 큰 일을 해 내신 점이라 생각됩니다. 부지런한 농부가 척박한 땅을 일구어 옥토로 만들어서 씨앗을 뿌리고 뿌린 씨앗을 비할 데가 아닌 결실 후 익은 곡식을 수확하여 곡간에 쌓아두고 생명을 유지하는 양식으로 쓰듯이 성서수학(聖書修學)이 일천한 노원본당 공동체 구성원들을 위하여 2년을 기간으로 하는 성서 100주간을 정하여 구역 반 조직을 한개의 그룹으로 구성해서 성서에서 주는 진실을 먹고 주님을 맛들이는 그래서 주님을 신앙(信仰)하는 마음을 건강하게 키우면서 친교를 이루고 강한 유대감(惟帶感)을 공유하는 기회를 만들어 주셔서 지금도 그 때를 못 잊어 추억(追憶)하는 교우들이 많은 것을 보면 매우 유익한 시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노원성당이 7지구 지구장좌 본당으로 정해지고 초대 지구장 신부님으로 오셔서
사목 하시는 동안 몬시뇰에 서임 되셔서 본당 구성원들에게 큰 영광을 안겨 주셨는데 몇 해 전에 은퇴하셔서 외롭게 지네신다는데 건강이 전만 못하다고 하셔서 안타깝기만 합니다.
4대 주임으로 오신 안병철(베드로) 신부님 이 분은 사제직무를 훌륭하게 수행하시는 학자
신부님으로 대학 강단講壇)에서 후학들을 지도하시기도 하고 영상 미디어를 통한 성서
강의를 하시면서 교회 전례의 특정한 시기에는 각 본당에 초빙되어 피정강론등을 하시는
분이셔서 본당에서는 "오늘도 주임 신부님 출장중이십니다."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하지만 주일에는 항상 본당에 계시면서 당신 관심대상인 연로하신 교우분들이나 봉사자
들에게 근황을 물으시고 격려를 해 주십니다.
미사시간에 강론을 하실 때는 전혀 몸짓이 없는 부동자세로 비단실로 엮은 것 같은 금언(金言)꾸러미를 술 술 풀어 놓는 것처럼 론리정연(論理整然)한 강론을 들을 땐 속세를 피해 적막한 곳에 가서 어느 도인(道人)의 가르침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하셨습니다.
본당에 당신을 비울 땐 부주임 신부님께 일임하시고 부주임 신부님 또한 허드렛 일 까지
하시면서 본당 일이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도록 공백을 잘 매워 주셔서 두 분이 조화를
잘 이루는 모습이었고 가끔 두 분이 성당마당을 거닐면서 대화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감사하는 마음과 순명하는 마음이 묻어나는 그래서 두 분의 서로에 대한 신뢰감이 산처럼
쌓인 것 같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베드로 신부님께서도 성전건축이라는 큰 일을 시작해서
마무리 하고 가셨는데 어떤이는 왜 대성전을 짓지 않고 부속건물만 짓느냐고 볼멘 소리를 하지만 본래의 취지는 대성전을 훌륭하게 짓기위해 나눔자리 건물에 교회가 할 수 있는
상업시설을 갖추어서 수익을 내면 대성전을 짓는데 크게 도움이 될 수 있고 복합시설을
갖추게 되면 다목적 이용도를 높일 수 있어서 시작하였는데 교회의 건물에 상업시설을
허가할 수 없다는 관계당국의 유권해석 때문에 애초의 계획은 수정되었지만 현재 나눔자리
다목적이용율이 100%이상이여서 교우들 모두가 고생(苦生)끝에 낙(樂)을 누리고 있습니다.
나눔자리를 건축하던 정해진 기간동안 본당공동체의 땀과 눈물을 말하면 잔소리이지만
그 중심에 선 신부님의 고심(苦心)은 헤아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오랜 세월동안 주님의 집을 짓는다는 일념으로 일해온 본당공동체의 고충을 헤아리시고
가건물 대성전을 앞으로 2,30년은 쓸 수 있도록 견고(堅固하고 아름답게 리모델링을 해서
분위기를 일신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일들로 저희들에게 쌓은 정을 두고 가시기가
너무나 마음이 아프셔서 저 제대 앞에 서서 우리들 가슴에 눈물을 뿌리는 신부님의 모습을
보고 우리들 마음도 아쉬운 마음이 슬픔으로 눈시울을 적셔야만 했습니다.
신부님 다시 뵙는 날 까지 건강하십시오,......
5대 주임으로 오신 이성운(미카엘)신부님 오랜 기간동안 군종교구에서 사목하시다가 하계동
본당으로 이동 해 오신지 1년 남짓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일년동안 얼마나 큰 사랑의 족적(足跡)을 남기셨길래 사제이동이 발표 되는 날 비보(悲報)가 전해진 것처럼 애절(哀切)한 마음을 달래지 못하고 이임하는 날 걸음 걸음에 까지 눈물을뿌리며 별리(別離)의 아픔을 새겨야만 하는 하계동 교우들의 마음을 그토록 슬프게 하셨습까?
아마 신부님 스스로 임지를 선택해서 가시는 길이었다면 하얂 꽃 잎들을 한 웅큼씩 뿌리며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면서 발자국을 남기라는 애증(愛憎)의 시(詩)라도 낭독하지 않았을까하는 상상(想像)을 하게 됩니다.
이상과 같이 노원본당 공동체를 위해서 헌신적인 사목생활을 하시다가
가신 분들과 오신 분을 저의 마음에 떠올리면서 갖고자 하는 것을 다 소유하면서도 더,더 하는 욕심 그리고 어려운 이웃이 안 중에도 없는 사람들과 저 갈라진 형제들 중에 모든 것을 다 누리며 처 자식을 거느리고 살면서 자신들의 영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목회자들과 크게 비교 된다는 느낌이 들어서 졸필(拙筆)로 열거(列擧)해 보았습니다.
영광스럽게도 우리 본당 공동체 안에서 세분이 은경축을 맞이 하셨고 안경열 신부님은 몬시뇰에 서임 되셨으며 보내드리고 난 아쉬움을 새로 오심으로 위로를 해 주신 이성운 신부님께서도 우리 노원본당에서 계신는 동안 은경축일을 맞이하게 되신다니 축복받은 우리들인가 싶습니다.
이렇게 오셨다 가시고 오신분은 오랜 세월동안 사제직무를 수행하시면서 쌓으신 경륜(經綸)과 지혜(智慧)를 다 쏟으시고 앞으로도 그렇게 훌륭한 지도(指導)를 받으면서 우리들 믿음살이가 이어질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한가지 소식은 초대 보좌 신부님으로 오셨던 김용화(바오로) 신부님께서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경(死境)을 헤메이신다니 측은하고 안타까운 마음 지울 수가 없습니다.
며칠전에 가을이니 양서(良書)를 좀 읽어볼까 해서 명동성당 성물 판매소에 들러 안병철 신부님이 지으신 책 중에 이미 읽어 본 *안병철 신부님과의 성서 데이트와 *성서 못자리 그룹 교재중 공관복음서 외인 사제들의 복음이라고 하는 요한복음 외에도 안 신부님이 지으신 여러가지 책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이 분의 책을 펴낸 출판사가 주로 -도서출판 기쁜소식과 -가톨릭대교 출판부와 -가톨릭 출판사였습니다. 이 분의 책은 신앙생활의 길잡이 이면서 살아가는데 유익한 책들이니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