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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헤로데 가문 사이에는 질긴 악연이 존재합니다. 이 악연은 주님의 탄생 전부터 시작되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이후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과 헤로데 가문 사이의 악연은 생명과 죽음, 빛과 어둠의 관계입니다. 진리와 거짓, 정의와 불의, 평화와 불화의 관계입니다. 주님께서 보시기에, 헤로데는 탐욕스럽고 권력에 젖어 사는 가련한 인생입니다. 명분과 체면의 틀을 깨지 못하는 어리석은 지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일 뿐입니다. 반대로 헤로데가 보기에, 주님께서는 언제나 불편한 진실이시고 진리이십니다.
사람들은 언제부터인지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지요. 그러나 그것은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욕구를 채우려는 변명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종교도, 정치도 백성이 없이는 무용지물일 뿐입니다. 모두가 백성을 위한 행위이고, 백성이 참여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종교이고, 정치이지요.
헤로데는 그러한 진실을 왜곡하거나 피하려 드는 가련한 정치의 수장입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은 누구를 따라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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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
세레자 요한을 죽인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만나서 없애려 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불안에 사로잡힌 그는 민심이 예수님에게 쏠리게 되면 자기자리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저는 불안에 대해 묵상하고자 합니다.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었는데 은퇴 연령은 50대인 현대 사회에 사는 우리는 은퇴 후 일자리 없이 살 동안에 궁핍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불안감은 공무원에게 뇌물의 유혹을 받게 하고, 자영업자에게 폭리를 취하게 하고, 가정주부에게 부동산 투기에 나서게 합니다. 또한 우리는 자녀들이 성적 경쟁에서 낙오되면 일생 동안 궁핍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무리해서라도 과외공부를 시키고, 경쟁에서 이기라고 재촉합니다.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면서 더불어 공존하는 평등과 나눔의 공동체 사회를 열고자 하는 분입니다. 극심한 경쟁으로 많은 보통 사람을 낙오시켜 생계 불안으로 밀어내는 오늘의 우리 사회와 같은 사회는 예수님께서 이상적으로 생각하셨던 사회와 많은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스웨덴과 노르웨이와 같은 복지국가는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끄떡없고, 국가채무도 적으며, 국민의 웰빙지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모든 노인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정도의 연금과 의료혜택을 받고, IQ 80~120의 고졸자 정도의 보통 사람들이 실업으로 인한 생계 불안에 시달리지 않고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살도록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삶의 질을 국가가 책임지는 복지국가입니다.
우리가 개인의 영달에만 연연해하면서 공동체 사회의 근본 문제를 외면하고 살면 예수님의 뜻과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를 예수님의 뜻에 가까운 ‘더불어 공존하는 나눔과 화해의 공동체 사회’ 로 이행시키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는 사람이 참신자입니다.
류정순(한국빈곤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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