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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을 바라보십시오. 세상의 인심은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거꾸로 돌아가도, 곡식들은 하느님께서 정해 놓으신 때에 맞추어 충실하게 그 열매를 맺어 갑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때가 가까이 오자,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묻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들의 심중을 헤아리고 계십니다.
유가(儒家)의 전통 가운데에는 ‘시중’(時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때에 딱 들어맞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이때 ‘시’는 곧 ‘천시’(天時)입니다. 하늘의 때이지요. 하늘이 정해 놓은 때에 딱 들어맞게 행하는 것이 곧 사람의 도리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면, 그가 곧 성인(聖人)이고, 그렇지 않으면 소인배에 해당합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때가 이르자, 제자들에게 하신 질문 또한 ‘시중’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이제 곧 때가 이르게 되니 ‘너희는 어떻게 할 것이냐?’라고 제자들의 태도를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때에 맞춘다는 것은 신중하게 산다는 것이며, 무엇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식별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신중하거나 식별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이야기하지만, 용케도 베드로는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장차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사시다가 돌아가시고 부활하실지에 대하여 간단명료하게 설명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각인시켜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의 때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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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내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른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고 물으신 후에 그러면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다시 물으십니다. 이에 베드로는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이는 예수님을 창조주 하느님으로 받아들이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미사에 참례하고 교회 행사에 몰두하는 건 아닌지요 ?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증거할 수 있는 흔들림 없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미사 중에 ‘부활을 선포하나이다.’ 라고 노래합니다만 미사가 끝나고 일상생활로 돌아오면 식사 때 성호 긋는 일조차 남의 눈을 의식해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느님을 증거하고 선포하는 일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바치신 우리 선조들의 박해 시대 때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행하는 작은 몸짓, 작은 동작 하나가 곧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증거하는 우리의 신앙고백이 될 수 있습니다.
보통의 삶을 사는 평균적인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하루에 한 끼나 두 끼를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바깥에서 식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과 식사를 같이할 경우 용기를 내어 성호를 그으면 좌중의 한두 명이 기회가 있을 때 은밀한 목소리로 자신도 가톨릭 신자임을 고백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예수님은 오늘도 순간순간 우리에게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 라고 물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작은 몸짓, 작은 응답으로 예수님을 창조주 하느님으로 받아들이기를 기다리십니다.
류정순(한국빈곤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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